말이 쉽지 이렇게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다. 짧게 축약해보니 이렇게 말이 끝났다. 아니, 결정이 났다.
2019년 9월 라트비아 남자는, 한국 여자를 따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적어도 앞으로의 6개월은 함께 새로운 도시에 와 국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겠거니 했다. 근데 우리의 운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내내 아프기만 하는 그를 보며 차라리 덴마크로 돌아갔으면 했었는데, 그 마음을 하늘이 받아준 것 같다. 굳이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고 그냥 아프지 않길 바란 건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은 원래 12월에 2주 동안 한국에 들어가 혼인신고 후, 작게나마 가족끼리 식사라도 하고 인도네시아에 파트너 비자를 받아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11월 말 아니 11월 초가 되자마자 그의 회사에 크나큰 변화가 찾아왔다. 짝꿍의 회사는 이태리에 주둔하고 있고 지사가 덴마크에 있다. 그리고 이전 CEO는 덴마크인이었으나 그가 갑자기 해고(?)를 당하면서, 이태리인 CEO로 바뀌었다고 했다. 즉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업무 및 경영 방식이 두 나라가 워낙 다르니, 짝꿍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있는 많은 동료들이 구조조정 및 자진 퇴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전달받았다.
현재 유럽 밖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잠시 유럽으로 돌아가겠다던 그. 결국 우리는 12월 혼인신고를 다시 미루게 되었고 나는 일주일 동안 한국에 혼자 출장을 가기로 했고, 그는 곧 덴마크에서 인도네시아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다만 상황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갑자기 승진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유럽 밖에서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서서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 진짜 이제 롱디(장거리)는 하지 말기로 했잖아.
그가 먼저 입을 뗐다. 그리고 나도 동의했다. 더 이상의 장거리를 하느니 그냥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우린 진저리가 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상황도 당장 그를 따라갈 수는 없었고,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내게 있는 업무들 그리고 회사와의 약속과 의리도 내겐 중요했다. 하지만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고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1. 지금 당장 나(한국 여자)는 퇴사가 불가능하다.
2. 당분간의 롱디는 어쩔 수 없다.
3. 12월 말 한국에 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4. 둘 다 현재의 일을 놓고 싶지 않다.
이미 지칠 때로 지친 나였지만, 쉬고 싶단 소리를 닳고 살긴 했어도 전혀 당장 다른 곳에서 일을 하거나 할 마음이 없었다. 차라리 퇴사하고 쉬면 쉬었지 이직을 할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내게 주어진 업무들을 난 완성하는 게 목표였기에 그것만은 꼭 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같으면 라트비아 남자는, 나를 따라오겠다고 바로 말했을 텐데 승진이 되고 그도 자리를 잡아가다 보니 고민이 많이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 온 기회를 놓으라고 말할 수가 없었고 나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내 임무를 끝내고 나면, 한국에 돌아가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다.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먼저 헤어지기 전 태국, 방콕에서 여행을 하고 각자 헤어졌다.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말이다. 왜냐? 우린 방콕에서 미래를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정말 원하면, 내가 퇴사하고 한국으로 너를 따라갈게."
예전 같으면, 이 말에 나는 그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는 전문직에 어느 나라 어딜 가서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이니까. 근데 이 말 조차 이번엔 쉽게 그가 하지 않았을뿐더러, 왠지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온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했을 때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감도 들었다. 사실 여태 일> 사랑이었다 나에겐. 라트비아 남자에게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지난 우리 관계에 있어서 나의 커리어는 늘 1순위 었다. 그래서 장거리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내게 진짜 중요하고 내게 더 행복을 주는 건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가 퇴사할게. 우리 당분간 덴마크에 살자 그리고 라트비아 가서 살자 나도 라트비아어 공부해야 하니까"
그렇게 우린 빠르지 않은 빠른 결정을 내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착잡하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갔다. 가자마자 상사분들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퇴사 의사를 비추었다. 이 말을 꺼내는 게 어찌나 무겁고 아프던지. 라트비아 남자 말로는 이건 '이별'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일을 사랑했고, 회사에 충성했던 나에겐 또 다른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일 거라고. 정말 그랬다. 몇몇 동료는 내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사는 내게 '이번엔 사람을 택해, 늘 일을 택했으니'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의 퇴사는 결정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업무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퇴사를 하게 되었다.그리고 우리는 4월 초 정말 혼인신고를 시작으로, 덴마크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장거리 연애가 드디어 끝이 날 것 같다. 한국 여자를 따라 인도네시아에 왔던 라트비아 남자를 따라 덴마크에 다시 돌아가게 된 나는 지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사실 몇 번이고 나의 선택을 돌려야 하나 고민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직은 내가 이곳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결국 이번엔 정말 '사람'을 선택했다.
나의 행복은,
이 사람과 함께 함으로 그 무엇보다도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젠 너무나도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