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전에 이혼을 생각하자고?
혼전 계약서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서 처음 들었다.
by Sunny Choi 메덴코 Aug 18. 2019
국제결혼을 하려면 서로에 대한 공부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오래 만난 사이일지라도, 서로가 익숙하고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우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이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2주 후면 인도네시아로 오는 그와 여느 때보다 더 많이 '결혼'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혼인신고부터 결혼식까지 그리고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언제 아이를 낳고 싶은지 과연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또는 인도네시아 파견 생활이 끝나면 우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등 말이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혼인신고하면 느낌이 어떨 것 같아?"
내가 기대한 대답은 이게 아니었지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느낌? 뭐가 달라.
그냥 종이 한 장이잖아. 똑같지 뭐"
순간 미간이 찌푸려지며 내가 기대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종이 한 장으로 여길 수 있냐며, 법적으로 너는 나의 보호자가 되고 너와 나는 공식적인 부부이자 가족이 되는 건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냐며 묻기 시작했다.
"나는 훨씬 전부터 너를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그리고 너에게도 약속했어. 평생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겠다고.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서 나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으면 좋겠어? 나는 늘 똑같을 거야.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보호받는다고 해서 너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거야. 혼인신고는 그냥 정부로부터 인증받고 보호받는 거잖아. 재산 분할이라던지, 양육권이라던지.."
사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어찌 보면 종이 한 장일뿐이다. 우리의 사랑을 공증받고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절차가 맞다. 다만 나에겐 '진짜 부부'가 된다는 그런 나만의 의미가 있었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그 공증으로부터 나오는 안정감이 내겐 기대가 되었고 설레었다. 진짜 이 사람이 나의 사람이 된다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전혀 짝꿍처럼 재산 보호, 분할 또는 양육권을 생각해서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혼을 벌써 생각하겠는가? 내 관점은 그랬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혼인신고를 하려면, 혼전계약서도 작성해야 하는데 우리 언제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더 깊게 나눌 거냐고 내게 물었다.
'혼전 계약서' 그걸 왜 작성해야 하는지, 그게 뭔지도 모른 채 나는 기분이 상했다. 사랑해서 결혼을 하는데 계약 결혼이야 뭐야? 벌써 이혼을 준비하는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내겐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 결혼 시 지켜야 할 사항, 이혼 시 재산 분할은 몇 프로로 할 것인지 아이가 생기면 양육비 등 그런 전반적인 결혼 생활들에 대한 수칙을 약속하는 계약서라고 한다.
"그걸 대체 왜 작성하는데? 왜 벌써 이혼을 생각하는데?"
눈물이 났다. 어찌 보면 너무 냉철해 보이는 그의 제안에 나는 대체 신뢰 없이 결혼을 어찌하자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딴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나의 인생을, 너의 인생을 걸자는 것인가?
"당연한 거 아니야? 혼인신고할 때 당연히 필요한 거잖아. 우리 결혼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거 맞아? 결혼은 뚝딱 되는 게 아니야. 이렇게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는 이것이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고, 냉소적인 그가 나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통화를 잠깐 멈추고, 혼전계약서 및 결혼계약서에 관하여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통 유럽에서는 너무나도 보편적이게 이루어지는 절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한국에선 재벌들이 상속문제로 하는 행위임을 알았다. 즉 나 같은 일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며, 한국에서는 법적 효력이 크게 없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처럼 국제커플들도 같은 일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또 피식 웃게 되었다.
"오해하지 말아 줘. 결혼이 쉽고 장난이 아니란 건 나도 알아. 다만 문화적 차이인 것 같아 지금 찾아보니 한국에선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거였어. 그래서 나도 몰랐고, 사실 여전히 이게 꼭 필요한 행위인지도 모르겠어. 다만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이자 안전장치이니까"
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는 잠시 또 까먹고 있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온 두 사람이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각각 서로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고.
그러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늘 말하지만, 나는 이미 예전부터 나 스스로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말했고 약속했어. 너는 이미 나한테 가족이고 평생 너와 함께 행복하기로 다짐했어. 난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 그래서 알아야 해. 우리의 결혼 생활이 더 즐겁고 행복하려면 무엇이 지켜져야 하는지, 무엇을 우리가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너도 나에게 너의 인생을 주는 거잖아.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안전제도 장치라고 난 생각해. 그 제도로 우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더 보호받을 수 있는 거고.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를 못 믿어서도 아니야 더 잘해보자는 약속이지."
사실 그의 말이 납득이 가면서 또 혼전계약서라는 것이 어찌 보면 참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생소한 것인지라 찝찝하고 섭섭한 마음이 전부 사라지진 않았다. 확실한 건, 항상 내가 하던 말버릇을 잊고 있었다. "사람 앞일은 모르는 것" 앞일을 모르는 것에 대한 대비이자 충분히 납득 가는 절차라는 것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머리로 자꾸만 이해가 간다.
정말이지, 결혼과 결혼 생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건 확실하다. 무턱 되고 우린 행복할 거야 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쩌면 그의 말대로 결혼이 뚝딱 되는 걸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고 반성을 하게 되기도 했다.
지난 4년을 이 사람과 결혼하여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고 생각했는데,여전히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더 생각이 깊어졌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