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연(2022), 성덕
어느 날 OPPA가 범죄자가 되었다.
2018년 겨울, 연예계를 넘어 사회를 발칵 뒤집은 범죄가 폭로되었다. '버닝썬 게이트'로 불린 사건은 클럽 내 마약 유통 및 약물 성폭력,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검경 및 정계 유착 의혹, 불법촬영 및 유포까지 다방면에 걸친 조직적 범죄였다. 이중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준 건 범죄에 가담하거나 연루된 남성 연예인들이었다. 정준영, 승리(본명 이승현), 최종훈 등이 집단 성폭행, 불법촬영 및 피해자 동영상 공유∙유포 등으로 줄줄이 수사를 받고 유죄로 판명되었다. (클럽 버닝썬의 사내이사였던 승리는 성매매 알선 및 성매매를 포함해 총 9개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받았다). 이종현, 용준형, 로이킴 등 많은 동료 연예인이 정준영에게 불법촬영물을 공유받거나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도 추가 폭로되었다.
집단 성폭행, 불법촬영 및 유포,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권력 유착에 아이돌을 비롯한 스타 다수가 가담한 건 이례적이나, 이러한 조직적 성범죄가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2009년, 고 장자연 씨가 기획사로부터 정치권 및 언론계에 '성접대'를 강요받고 자살했으나 그 대상으로 거론된 인물은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2013년 불거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범죄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야 제대로 수사되며 면소로 종결되었다. (이 사건은 보통 '김학의 별장 성접대 혐의/의혹'으로 일컬어지나 이는 성범죄의 본질을 가리고 피해 사실과 가/피해자 관계를 흐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상세 내용은 이 칼럼 참고.) '버닝썬 게이트'는 이러한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여성 거래에 대한 한국사회 인식을 다시금 드러냈다.
남성 연예인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되었으나 무마된 사례도 여럿 있다. 박유천(동방신기 전 멤버)은 2016년 유흥업소 종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총 네 명의 여성에게 차례로 고소당했다. 그는 고소인 중 한 명을 명예훼손과 무고로 역고소했다. 이 사건은 박유천의 성폭행과 피해자의 무고 모두 무죄 판결을 받는 기묘한 결말을 맞이했다. 지금은 해체한 가을방학의 멤버이자 작곡가인 정바비는 두 명의 여성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2022년에 징역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 한 명은 자살한 뒤였다.
남성 아이돌이나 가수의 팬은 대개 여성이다. 팬들은 이들의 성범죄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큐멘터리 <성덕>(오세연, 2021)은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영화다. 감독은 '오빠'가 범죄자가 된 후 여성 팬들이 겪는 혼란의 과정을 오롯이 담는다. 그 중심에는 정준영의 팬이었던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버닝썬 게이트' 후, 정준영의 자타공인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로, 대개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만나는 등 접점이 생기는 경우를 일컬음.)이었던 감독에게 성덕의 증표들은 낙인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시기에 승리를 좋아한 친구와 함께 감독은 덕질을 그만두겠다는 '탈덕' 의식을 치른다. 그러나 의식을 치른다고 마음이 쉽게 정리되진 않는다. '뉴스에 나오는 저 사람이 내가 좋아한 사람 맞나?'라는 혼란은 좋은 사람이라 믿었던 데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진다. 열정적 소비자로서 그에게 부와 권력을 주는 데 일조했다는 죄책감도 불러온다.
이런 감정은 감독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팬들의 공통분모다. 그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정리하고 소비를 멈춘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을 내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끝까지 무결함을 주장하며 응원하는 팬들도 있다. 그들의 마음도 살펴볼지 고민하던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광장의 '태극기 부대'를 찾아간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만 흔드는 게 아니다. 박근혜에게 그리움과 애정이 담긴 편지를 쓰고, 그를 추켜세우거나 그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한다. 그들의 애정은 대체로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에서 시작되므로, 카메라는 자연스레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으로 넘어간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 방명록에는 왔다 간 사람들의 이름이 제법 많이 쓰여 있다. 사실과 무관한 맹목적 믿음은 어디에서 올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그럴 리 없다는 확신일까. 그렇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선택과 마음의 무결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태극기 부대와 박정희 동상을 본 후, 감독은 맹목성을 더 파고들지 않기로 한다. 대신 지지를 멈춘 여성들의 내적 갈등과 괴로움에 집중한다. 내가 좋아한 모습은 다 거짓이었을까? 무대에서 빛나던 모습과 기사에 뜨는 모습이 동일 인물인가? 팬을 향해 상냥하게 웃던 얼굴이 동시에 누군가를 성폭행하고 불법촬영물을 돌려볼 수 있는 건가? 성매매를 하고 알선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자신을 지지하는 대부분이 여자인데도?
그럴 수 있다. 사람은 다면적이니까. 딸이 있는 남성이 룸살롱에 가거나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면성을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 다면성의 폭이 넓을수록 괴리감도 크다. 다면성의 한 면이 폭력과 범죄일 때, 그리고 내가 그의 소비자이자 지지자일 때, 괴리감은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나의 애정과 소비가 그의 범죄를 부추기는 데 기여했다면? 성범죄를 더 쉽게 저지를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스타의 지위는 소비자를 통해 만들어지고, 팬은 가장 열정적인 소비자다. 질문은 가정이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서 감독과 인터뷰 대상자들이 '우리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를 두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오빠'의 이면을 모른 채 좋아한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 쏟아부은 사랑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살게 한 것은 사실이다. '오빠가 공부 열심히 하라 그래서', '오빠가 효도하라 그래서' 거둔 크고 작은 인생의 성취와 보람 역시 삶에 남아 있을 테다. 결말이 엉망이어도 과정은 나름대로 내 안에 남는다. 그래서 영화는 ‘다음에는 먼 훗날에도 웃으며 모든 이야기를 추억할 수 있는 누군가를 좋아하기를’ 소망하며 끝난다.
사랑은 상대의 무결함을 입증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폭력과 범죄 앞에서도 쏟았던 애정이 단칼에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애정을 잘라내고 지지를 거두는 건, 사랑이 누군가를 해하는 양분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 때문일 테다. 이러한 책임은 애정과 지지에 기대는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이 확장성이 <성덕>의 무게를 완성한다.
영화를 보며 많은 게 떠올랐다. 내 십 대를 거쳐 간 '오빠들', 좋아하는 아이돌이 성범죄로 고발당했을 때 친구가 보인 반응, 진보적이기로 유명한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대자보, 끈질기게 이어진 2차 가해에 진저리 치던 친구의 얼굴. 오랫동안 사귄 애인이 성폭행 가해자라고 털어놓던 활동가의 목소리와, 한때 정치판을 바꿀 거라 기대하고 지지했던 몇몇 정치인들의 현재와, 유독 팬이 많아서 더 충격적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도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결백을 믿는다는 이들이었다. 공개적으로 박원순의 업적을 강조하고 추모하며 공이 과를 가릴 수 있는 듯 굴던 많은 사람들. 사건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살해 모든 책임을 피해 갔음에도 성추행 사실이 법원과 인권위원회에서 재차 인정된 사건에서, 끝까지 피해자를 탓하는 이들. 죽은 가해자를 향해 여전히 맹목적 지지를 표하는 사람들의 가장 최근 소식은 그를 변론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단 얘기였다. 그건 남을 해하는 양분이 되어 버린 마음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의지의 확인이었다. 지저분했다. 애정과 정치적 지지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도,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십분 활용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취급한다는 점에서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의 성범죄 사례는 흔하다. 숱한 반복 속에서 나는 <성덕>의 결말처럼 다시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다만 내 마음이 남을 해하는 양분이 된다면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지지하게 되든 맹목적이지 않기를. 사랑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 않기를. 사랑과 이성을 구분할 때 더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
커버 이미지 오세연(2021), 성덕.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