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우주로, 말러 교향곡 4번

by Watragod

해머의 타격이 남긴 자리에 돋아난 늦은 봄의 햇살

https://youtu.be/vHhZnBLD9wE?feature=shared


어제('26년 3월 24일)의 음악은 잔인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 필하모닉과 함께 휘두른 말러 교향곡 6번은 위로가 아닌 고문이었다. 그것은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라기보다, 고출력 레이저로 영혼의 환부를 지져버리는 듯한 예리하고도 뜨거운 압박이었다. 1악장의 패기 넘치는 행진곡이 군화 소리가 되어 지상을 짓밟을 때, 나는 그 소름 끼치는 다이내믹 속에서 현실의 답답함과 정상을 갈망하던 나의 깨어진 의지를 보았다.

동굴 속 같은 고독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던 팀파니는 심장을 조이는 운명의 노크 소리였고, 3악장 말미에서 터져 나온 격렬한 분출은 천국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거대한 해머의 수직 낙하였다. 그 무자비한 타격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悲愴)과는 결이 달랐다. 눈물 흘릴 겨를도 없이 모든 희망을 분쇄해버리는 실존적 파멸, 그 비참함 끝에 나는 혼란을 리셋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하지만 오늘 밤, 오토 클렘페러가 이끄는 교향곡 4번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다. 번스타인이 연주한 6번의 그 비참했던 해머 자국 위로 ‘늦은 봄의 따뜻함’이 내려앉았다. 도입부의 썰매 방울 소리는 겨울의 추위가 아닌, 싹을 틔우는 대지의 생동감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였다. 클렘페러의 지휘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아주 굳건하고 또박또박하게, 한 땀 한 땀 음표를 짚어 나가며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보여주었다.

1악장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이름 모를 목동이 피리를 불며 혼자 노닐고, 태양이 내리쬐는데 엷게 비가 내리는 여우비의 묘한 빛이 내 마음을 적셨다. 2악장에 이르러 기괴하게 들릴 법한 바이올린 소리는 오히려 코끝을 톡톡 건드리는 재기발랄한 자극이 되었고, 마침내 3악장의 그 깊은 평온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존재로부터 쓰다듬을 받는 위로’를 경험했다. 굵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저음의 스타카토는 기쁨을 증폭시켰고, 멜랑콜리한 클라리넷의 유도는 나를 지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 여정의 정점에서 터져 나온 E장조의 광채는 6번의 팀파니 타격을 천국을 여는 노크로 치환했다. 하얀 구름만이 존재하는 배경 속에서 회전목마를 타듯 뱅뱅 도는 영혼의 춤, 그리고 도달한 우주적인 여정 끝에 만난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노랫소리. 그녀는 누구에게 구걸하지 않는 지적인 읊조림으로 천상의 언어를 건넸다.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그냥 내버려 두어라.” 읊조리듯 점점 느려지며 깊게 내려앉는 그 무게감 있는 음성은 어제의 그 비참했던 해머 소리를 완전히 증발시켰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해머의 공포를 기억하지 않는다. 비통함마저 고귀하게 승화시킨 그 따뜻한 존재에 흡수되어, 나 자신이 곧 전부가 되는 최후의 평온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지옥 같은 현실의 투쟁(6번)을 통과해온 영혼만이 맛볼 수 있는, 눈부시게 투명하고 단단한 리셋. 오늘 밤 나의 잠자리는 그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의 이어짐 속에 오롯이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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