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LVVCIZUdeB0?si=k843sN7tGHogSDAp
벚꽃이 한창인 이 봄날, 나만의 정갈한 의식을 치르며 슈베르트를 만났다.
해묵은 LP 한 장을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린다. 클리포드 커즌과 빈 팔중주단의 '송어' 5중주. 턴테이블을 미리 돌려두고 스프레이 클리너를 뿌린 뒤, 벨벳으로 소리골의 먼지를 정성스레 닦아낸다. 판을 들고 반대 방향으로 한 번 더 공들여 닦고는, 스타일러스의 바늘 끝까지 세밀하게 점검한다. 이 수고로운 과정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음악을 맞이하기 위한 내 마음의 정돈이자 고귀한 '의식'이다.
드디어 바늘이 소리골에 내려앉고, 정적을 깨는 그 짧은 '치지직' 소리.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이 아날로그의 신호가 언제나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오늘은 스피커 대신 헤드폰을 택했다.
음악이 흐르자마자 귀로 쏟아지는 소리는 경이롭다. 무엇보다 이 연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콘트라베이스의 독자적인 존재감이다. 3악장의 박력 있는 시작부에서 묵직하게 치고 나오는 그 현음은 곡의 분위기를 단숨에 고조시킨다. 헤드폰의 정교한 해상도 덕분에 베이스의 깊은 울림이 뇌리에 직접 박히는 기분이다.
커즌의 피아노는 역시나 이름값을 한다. 어둡지도, 과장되게 밝지도 않은 그 '고귀한 물방울 소리'. 그의 타건은 맑고 거짓이 없으며, 어떤 과장도 섞이지 않은 채 정갈하게 흐른다. 현악 4중단과의 호흡은 또 어떠한가, 피아노와 현악기들이 한 몸처럼 대화를 주고받으며, 전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4악장에 이르러 익숙한 멜로디가 시작되면, 물속을 헤엄치는 송어들의 생동감이 눈앞에 그려진다. 여러 마리의 송어가 쪼르르 헤엄치다 물 위로 툭 튀어 오르고, 때론 힘이 빠진 듯 유영하다가 다시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그 역동적인 흐름. 5악장은 마치 기분 좋은 한낮의 바람을 맞으며 조금은 취한 듯, 나른하면서도 주변의 기분 좋은 소란함에 잠들지 못하는 그런 묘한 정취로 나를 이끈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창밖 풍경과 이 청량하고 시원한 연주가 참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오후다. 정성껏 닦아낸 LP의 소리골을 타고 흐르는 이 정갈한 선율이, 오늘 나의 봄을 가장 우아하게 완성해주었다.
이 앨범의 마지막 여운이 가시기 전에, 커즌의 또 다른 절제된 연주가 담긴 판을 한 장 더 찾아보고 싶어진다. 지금 이 기분을 이어갈 다음 음반은 무엇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