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에서 한 달 살기.
퇴직 후.
역마살이 낀 것 마냥
집에만 있으면 온몸이 들썩 거렸다.
지금은 코로나때문에 엉덩이 붙이고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괜찮았던 시대가 있지 않은가.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생겨.
온 가족이 함께 미국에 단기 체류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온갖 추억과 무용담이 설화처럼 쌓여있지만.
그중에 공유경제의 끝판왕 에어비앤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캘리포니아의 몬터레이는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이다.
미국 사람들은 해변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BAY라는 이유로 그곳의 집값은 금값이다.
우리는 당연히 그곳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를 6개월 계약했다.
가장 저렴해서 월 2500불. 가장 저렴한 아파트를 계약했음에도 우리 수준에서는 꽤나 무리다.
월세 베이스의 미국이지만. 아직도 미국의 중부나 동부에서는 1000불 대의 집을 계약할 수 있으므로
꽤나 높은 수준이다.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허름한 2500불짜리 빈 아파트를 계약했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이 대세라고 하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자만이
맥시멈 라이프의 훌륭한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에서 살기로 했다.
한국인의 훌륭한 문화 바닥 생활을 그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니멀 라이프의 끝판왕답게.
우리는 야외용 플라스틱 식탁과 의자 4개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냈다.
공부. 숙제. 독서. 밥. 대화. 그리고 넷플릭스 까지.
그러던 어느 날 이상 징후가 왔다.
아이들의 몸에 알 수 없는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시작으로 나와 남편.
우리는 원인 모를 가려움에 시달렸고.
의혹이 확신으로 변해가던 그 순간.
동체시력이 복싱선수 뺨치는 남편은
카펫 사이를 폴짝거리는 FLEA. 한국말로 벼룩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잠시 삼천포로.
대학교 친구들 단톡 방에서 있던 일이다.
친구 중에 한 명이 프리마켓에 다녀왔다고 하자.
중학교 영어 선생님을 하는 친구가.
"정말 미안하고 딴지 걸려는 건 아닌데. 내 직업병이니 이해해줘.
FREE 가 아니라 FLEA야"
라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여하튼 우리가 발견한 그것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의 FREE덤 이 아닌 FLEA였다.
그것도 겁나 많이.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방역을 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몬터레이의 호텔비를 제공받았다.
방역 후 아파트에 돌아와서 확인해봤지만. 벼룩의 개체수는 줄었지만 종식되지는 못했다.
마치 코로나처럼.
방역을 반복하던 우리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파트먼트 매니저도 수긍한 채로 위약금 없이 계약을 파기했지만.
당장 계약할 아파트가 남아있지 않았다.
몬터레이의 아파트는 금값이었을 뿐만 아니라. 귀하기까지 했다.
그때 우리는 인생 뭐 있어! 다 탕진해보자! 를 외치며.
최후의 수단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왕 살아보는 거. 여기서 휴가 즐긴다 생각하자를 외치며!!!
여기저기에서 다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한 달씩. 띄엄띄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곳. 세 곳을 계약했다.
이렇게 우리의 에어비앤비에서 세 달 살기는 시작된 것이다.
이사(?) 전날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첫 번째 달에 살 집은 위치도 좋고 가격도 괜찮았으니까.
하지만.
너무 순조롭다 싶었다.
첫 번째 집에 들어가기로 한 전날 집주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So sorry. The property is not available."
(번역: 미안 미안! 우리 집 못 빌려줘)
우리가 들어갈 날이 내일인데..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에 미친 듯이 클레임을 걸었지만.
갈 곳 없는 우리가 당장 내일 들어갈 수 있는 집은
비싸기로 유명한 Carmel-by-the-Sea의 월 4200불짜리 집 하나였다.
에어비엔비는 보통 일일 숙박자와 월 단위 숙박자에게 할인율을 다르게 적용한다.
4200불짜리 집은 에어비앤비에서도 꽤나 많이 비싼 축에 속한다.
아무리 인생 뭐 있어 탕진해보자를 외쳤지만.
450만 원을 한 달 집값에 쓰는 것은.. 오 마이 갓이다.
2007년형 자가용을 아직도 타고 있는 우리에게 450만 원짜리 집은
용기를 넘은 만용이었고 무모함이었다.
하지만...
그래. 근 사십 년 인생이면 한 달쯤은 청담동에 살아볼 수도 있는 것이지.
두 달도 아니고 세 달도 아니고 한 달 아닌가?
이대로 호텔을 전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심을 한 우리는 에어비앤비 고객센터와 딜을 하기 시작했고. 마치. 남대문에서 흥정을 하듯.
서비스 크레딧을 흥정하기 시작했다.
"깎아줘. 나 돈 없는데 집 필요해."
300달러!
500달러!
400달러!!
콜!!!
400달러 크레딧을 받으며
우리는 4200불짜리 집에 3800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하튼. 우리는 그레이트 스쿨 학군 10점 만점의 10점에 빛나는.
예술가의 도시.
캘리포니아의 가로수길이자.
몬터레이 베이의 8 학군인 카멜 바이 더 씨에 입성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4200불만큼 행복했다.
세상은 역시 지불한 만큼 돌려주나 보다.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 같은 마을.
집 앞의 숲 속 놀이터.
걸어서 갈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 (그곳에서 아이들은 무제한 만들기를 하고 제한 없이 책을 빌렸다)
해 질 녘이면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해변.
심지어. 골퍼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1위 패블비치 골프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매일 어린이 도서관에 들렀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마을의 오솔길을 거닐었다.
해 질 녘이 되면.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이는 붉은빛 석양을 보고 또 보고 질리도록 보았다.
매일매일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한가득 낀 채로 어그적 어그적 걸어와 발을 말렸다.
만약. 다음 에어비앤비 숙소가 예약되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지출을 무릅쓰고라도 이곳에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집 근처에서 또 집안에서 너무너무 행복했으므로.
인생에서 가끔씩은 무모한 사치도 필요한 법이다.
항상 예산에 딱딱 맞춰가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과감한 마이너스가.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법.
그리고
가끔은 인생의 FLEA 가 진짜 FREE를 찾아주는 법.
월 4200불짜리 선샤인 오두막 되시겠다.
예술가의 도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된다.
*브런치 작품
https://brunch.co.kr/@cmosys#works
* 블로그도 다시 시작합니다. 가끔 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