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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Feb 06. 2023

결핍이 수치가 되지 않으려면

결핍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지거나 모자란다는 뜻이다. 결핍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기는 애정 결핍, 칭찬에 목말라 생기는 인정 결핍, 지병이나 사고로 생기는 건강 결핍, 배우지 못해 생기는 배움 결핍 등등 가지가지다. 한번은 아들을 얻으려다 딸만 여덟을 내리 낳은 분이 계셨다. ‘아들 아들 하던 시대’에, 한평생 시댁 식구들과 이웃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았다. ‘아들도 못 낳은 X’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죄인이 된 심정으로 살아야 했단다. ‘아들 결핍’이 평생의 한이었는데, ‘딸 딸 하는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분의 팔순 잔치에 초대받아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사회자가 자녀를 무대 위로 다 올라오라고 하자, 각양각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덟 명의 딸이 엄마 좌우편에 섰다. 여기저기에서 부러움이 섞인 감탄이 터졌다. ‘얼마나 좋을까? 너무 부럽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그제야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교회에 오실 때마다 왜 과하게 장신구를 하고 오는지. 귀에는 금귀걸이, 목에는 진주 목걸이, 손에는 금가락지 옥가락지 등등.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는, 멀리에서부터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했다. 과해도 너무 과하게 보였다. 그런데 팔순 잔치에 참석하고 나서 생각을 ‘새로고침’하게 되었다. 딸만 여덟 명이다. 환갑, 칠순, 팔순에 선물 하나씩만 해도 무려 24개다. 남들이 볼 땐 과할지 몰라도, 알고 보면 과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수할 정도였다.


캠퍼스 사역할 때 한 청년을 만났다. 늘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잔뜩 주눅 들어 있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SKY 출신의 고학력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들에게도 높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결국 SKY에 들어가지 못하면서부터 ‘못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인정 결핍’이 찾아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청년은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면, 그땐 부모님도 인정해 줄 거로 생각했다. 독기를 품고 주식을 공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구멍 난 곳을 엉뚱한 것으로 채우면, 지금 당장은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메워야 할 것을 때우는 건 임시방편이지 해결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핍하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자가 생각난다. 그녀도 구멍 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늘 도둑고양이처럼 눈치 보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우물은 그녀가 목마름 속에 살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는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다. 뜨거운 대낮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녀에게는 ‘우연히’였지만, 예수님에게는 ‘일부러(요4:4)’였다. 본래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돼지 취급했다. 그 지역을 통과하는 건 유대인으로서 신앙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목마름을 해결한다. 구멍 난 인생이, 예수님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줄줄 새는 구석을 더는 때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결핍이 해결되지 않으면 감추고 싶은 결함이나 결점이 된다. 반대로 예수님을 통해 건강하게 해결되면, 오히려 간증이 된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4:39)’ 레너드 코헨의 노래 <Anthem>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다. 빛은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다.’ 갈라진 틈으로 아픔과 고통과 상처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진리의 빛도 그 틈으로 들어온다. 예수님이 결핍이라는 틈으로 드나들면, 우리에게 자유가 찾아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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