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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방끈수공업자 Oct 15. 2016

해외 비정규직 연구 노동자

그냥 쉬운 말로 해외 포닥.

미국에서 수 년째 지내고 있는 사람의 짧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고민입니다. 저도 아직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포닥에 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포닥으로 살아가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cnam/21)


나는 박사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다.


학위를 마치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온 지도 이제 한 달반이 넘었고 새 일터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사에, 새로운 환경 적응에 나도 가족도 고생들이 많았다. 이제 일이 돌아가는게 조금씩 보이고 보스의 스타일도 익숙해져가면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마음의 여유가 아주 조금 드디어.


여러가지가 학생 때와는 다르다. 물론 하고 있는 연구가 예전과 완전히 같지 않아 생기는 느낌일 수도 있으나 신분의 차이-특히 그 불안정성-에서 오는 근본적인 것들이 더 많다. 


첫째로, 학생 때는 연구의 진도가 조금 지지부진해도 지도교수와의 미팅 만이 조금 부담이 될 뿐이었고 그마저도 질문만을 들고가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나는 학생이고 당신은 선생이니.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기에 질문을 스스로 풀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포닥이라고 적지않은 월급 줘가며 쓰고 있는데 백날 질문만 한다면 사용자 입장에서 재계약을 선뜻 해줄 수가 없을 것이다.


둘째로, 이 곳의 똑똑한 학생들이 부담되는 부분이 있다. 나는 A-B라는 연구를 하다가 지금은 B-C를 하는 곳으로 왔다. A-B에 대해서는 누가 언제든 나를 붙잡고 의논을 하더라도 쓸만한 답을, 혹은 최소한 중요한 질문을 찾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이 곳에서 B-C를 하다보면 A자체, 그리고 A와 B의 연결에 대해서는 관심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화가  B-C 혹은 C (때로는 D, E, F...ㅠㅠ)에 집중된다. C 분야를 거의 새로 접한 나에겐 B와 C의 연결고리마저 때로는 혼란스럽고 C에 대해선 더더욱이나 할 말이 줄어든다. 시간이 지나며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해결될 문제지만 아직 이 곳의 똑똑한 대학원생들과 수준 맞게 대화를 이끌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내가 있는 학교는 내 분야에서 전미 최고를 다투는 수준이라 학생들은 참으로 똑똑하다.) 그나마 다행히 학부생들은 박사라는 타이틀이 좀 멀게 느껴져서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고맙다..ㅠ)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포닥 생활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에 계속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나도 그랬었지만, 한국에서 지내온 분들은 해외 생활에 대해 좋은 면 위주로 알고 계신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다른 주로 여행을 가면 그런 것(대자연, 정신적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해외 생활에 대한 그런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곳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다보면 세상 어디에서나 느끼는 희노애락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느낀다. 그 희노애락이 자극하는 감정의 부분들이 서로 다르긴 하겠지만.


박사과정 시작할 때만해도 나는 학위 받고 포닥하고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는게 목표였다. 요즘은 반반이다. 미국에도 좋은 자리가 있다면 몇 년은 더 지낼 용의가 있다. 그러다보면 그냥 눌러 앉게 될 수도 있고. 그런데 눌러 앉게 되면, 그 나머지 인생이 과연 한국에서 지내는 것 보다 행복할까? 반대로 한국에 돌아간다면, 한국에서의 생활이 미국에서 평생 사는 것보다 나을까? 물론 양국에서 잡을 자리가 모두 "정규직"이며 최소 "주말이 있는 삶"이라는 가정을 하기로 하자. 어려운 일이지만 상상은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사실 미국이라고 다 "저녁이 있는 삶"은 아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자의에 의한 것이 많겠지만,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저녁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거나 공부한다.)


"애 키우기 좋다더라."


이건 예전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한국보다 경쟁이 덜해서 애들이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근데 그건 "애들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도 상위권으로 갈수록 (학업 성취도면에서 혹은 경제적 능력 면에서, 혹은 둘다) 한국이랑 크게 다른 것 없는 느낌이다. 공부해야지, 악기도 다뤄야지, 운동도 해야지, 학업 외 활동 이력도 잘 쌓아야하고, 심지어 어떤 교수님들 애들은 부모의 직업을 십분 활용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연구 비스무리한 걸 시작하기도 하고.. 그걸 대학 입시 에세이에 강조하고.. 암튼 아이의 교육에 관심과 욕심이 모두 많고 경제적 능력이 되고, 애들이 따라오는 경우, 그 교육의 강도는 한국의 비슷한 가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은 위의 조건을 다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부담감을 갖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나도 아마 같은 상황이라면 그럴 것 같고) 여기서는 할 사람, 할 수 있는 사람만 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럼 애 키우기 좋다는 이야긴 뭔가? 바로 아이가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좀 바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저녁은 집에서 가족이 함께 먹고 저녁 먹으면 아이랑 놀 시간도 있고 목욕도 직접 시키고 잠들 때까지 곁에 있는다. 자러 들어가면 다시 나의 할 일을 시작하긴 하지만. 주말에도 일요일은 어디 나가서 시간보내기 부담스럽지만 토요일은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갈 수 있다. 덕분에 아이가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한다. 엄마하고만의 반쪽짜리 상호작용이 아니라 그런지 아직 말은 못하지만 표현이 비교적 풍부하다. 애가 이제 학교를 다니게 되면 내가 아침에 출근하며 애들 학교에 데려다 주게 될 것이고 여러가지 활동들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직장생활을 해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생활이 전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오면 애는 이미 자고 있을테니. 그리고 주말에는 시체놀이를 하게 될테니.  


"시댁이 멀어 좋다더라."


아내는 시댁으로부터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 아니지만, 시댁이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시댁과 지구 반대편에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아쉽고 그립겠지만 한편으로는 반길 일이다. 특히 명절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제 친가, 처가 부모님들께서 점점 나이들어가시면서 외로워보이시는 게 맘이 편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손주들 얼굴 보여드리며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내의 생각이 나와 100% 같지는 않겠지만 친정 부모님까지 포함해서 생각한다면 그저 외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런데 그럼, "나"는?


아이 생각, 아내 생각을 해보면 미국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가 제일 중요한데 그게 빠졌다. 내가 만약 미혼이라면 나는 당연히 한국행을 택했을 것이다. 해외에선 깊은 친구 사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나마 정들었던 이전 동네의 친구들, 선후배들, 이제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한국 친구들은 이미 못본지 몇 년이 넘었다. 미국 사회의 기혼자들의 사생활은 가정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밤 늦게 시내에 나와서 술 한잔 걸치는 일은 잘 없다. 밖에서 사먹는 술 값도 비싸다. 대중교통도 잘 없다. 그만큼 가족들과 더 가까워지고 굳건해지지만 가끔 XX 친구들과 홍대 거리에서 밤늦게 술 먹던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이런 감성적인 것보다 중요한 건, 인생의 1/3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일, 직장에서의 생활이다. 회사 인턴 생활을 조금 해봤지만 거기서의 나의 모습, 그리고 동양인 이민자들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카시안인 경우가 많았다. 동양계들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다. 나 같은 1세대의 경우는 언어적, 문화적 한계로 팀이나 조직을 리드하는 직책을 맡기가 쉽지는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극한의 노력을 한다면 안될 일이 있으랴.) 미국에 10년, 20년을 살고 매일 직장에서 영어를 쓴다해도 그건 업무 용어로 가득한 "일 영어"이고 사람 사이의 감정에 대한 대화는 주로 집에 와서 한국말로 하게 된다. 아무리 미국 사회가 개인주의이고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기본 매너라고 할지라도,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와는 아무래도 사적인 이야기도 조금 나누게 되고 이런 저런 공감이나 조언을 주고 받을 기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는 일 뿐만 아니라 조직원들을 감정적으로도 잘 다독이고 배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에겐 이런 부분은 상당히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다. 아무리 잘 표현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또한 미국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온 티비쇼, 만화, 영화 등 이 곳의 대중문화에 익숙하고 그런 감성들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다른 문화권에 살아온 나는 그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정답은 없다. 가족을 위해선 미국에 남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나는 이 사회에서 계속해서 외국인으로,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을 가끔 받다보면..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잊어가다가도 다시 또렷히 생각하게 된다.) 평범하게 큰 욕심없이 가족들과 살아가는 삶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나 같은 사람이 주류인 사회에서 조금 더 큰 야망을 갖고 사는 삶을 살 것이냐... 아직 고민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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