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3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개나리다. 개나리의 노란색이 봄의 따뜻한 느낌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벚꽃은 어렵지 않게 마주하지만, 개나리를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아파트 단지만 하더라도 벚꽃이 대부분이다. 드문드문 목련과 매화는 있지만, 개나리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봄 하면 개나리 또는 진달래였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벚꽃이 제일 흔한 듯하다. 첫째와 둘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벚나무가 가장 많다. 2주 전 금요일에 아내와 집에서 6km 떨어진 지점까지 러닝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한 개나리가 이번 봄에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개나리였다.
3월은 생명들이 발아해서 성장하는 시기여서 활기가 느껴진다. 이는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나긴 겨울 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새로운 학년으로 개학하는 때이면서 동시에 7살이었던 유치원생들이 새로운 환경인 학교에 처음 발을 내딛는 달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입학식은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에게 있어서 졸업식과 더불어 가장 큰 행사이다. 입학식을 하는 당사자인 아이 못지않게 부모들도 설레면서 떨린다. 어떤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될지, 어떤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실지 기대 반 걱정 반인 마음을 품은 채 입학식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아직 어리기만 한 우리 아이가 학교 생활 자체에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모든 학부모분들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나는 나의 어렸을 때가 생각나서 걱정이 더 앞선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아는 지인들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가 학창 시절에는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하며, 매 학년 개학할 때마다 최소 첫 한 달 동안은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어색할수록 오히려 더 많이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지금의 내가 예전에는 정반대였다는 걸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가 가장 심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는 정도는 덜 했지만 역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가면 가는 대로 또 처음 얼마간은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낯섦이 싫었다. 싫을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새로움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뭔가 도전하는 게 어려웠다. 먼저 뭔가를 해보겠다고 부모님께 말하거나 나선 적이 손에 꼽힌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거나 어떻게 하지 않았음에도 나 혼자 힘들어했다. 성격 탓이었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쉽지 않았다. 노력의 결과는 20살이 되어서야 빛을 발했지만, 나의 학창 시절은 매번 두려움과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
그랬던 나였기에 우리 아이들만은 그런 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랐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와 정반대인 아내를 닮기를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간절히 소망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는 아내를 좀 더 닮았다. 아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낫다.
첫째인 아들은 어린이집 초반에는 좀 힘들어했지만, 유치원부터는 금방 친구들을 사귀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첫날부터 친구들과 친해져서 놀았고, 3학년인 지금은 학교에 알고 있는 친구들이 족히 70명은 넘는 것 같다.(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부산에서도 학생 수가 매우 많은 편에 속한다. 학년 당 보통 9개 반이 있고 각 반의 인원수는 평균 23~25명이다.)
아들과 같이 동네를 다니면 꼭 지나가는 누군가와 안녕 하고 인사한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몇 반의 누구라고 금방 알려준다.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도 학교 운동장이나 아파트 놀이터 또는 태권도 학원에서 놀아서 안다고 한다.
둘째인 딸은 첫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속도가 나보다 빠르다. 유치원 때 같은 반 친구들 모두와 친하게 지냈고, 생일이 아님에도 자주 선물을 받아왔다.
유치원은 보육과 놀이가 중심이어서 (물론 취학 전 필요한 교육에도 집중함은 물론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챙기는 게 학교와 다르다.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매번 사진으로 찍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알려줬고, 아픈 아이들이 있으면 약도 잘 챙겨 줬고, 급하면 병원에도 대신 데리고 가주었다. 각 반을 담당하는 선생님도 두 명이어서 아이들을 더 면밀하게 봐줬다.
하지만, 학교는 유치원과 완전히 다른 세계다. 유치원처럼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봐주는 게 어렵다. 선생님의 열정 차이가 아니다. 유치원과 학교는 운영 목적과 교육의 성격이 다르다. 학교는 학습과 과정 중심의 정규 교육이 목적이다. 그리고 유치원과 비교하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7살과 8살은 불과 한 살 차이고 겉모습도 달라진 건 거의 없지만, 속한 환경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부모로서 가지는 걱정도 그에 비례한다.
3학년인 첫째는 1학년과 2학년 때처럼 무탈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는 첫째가 재미있게 학교를 다닌 걸 쭉 봐서 그런지 2월 초까지만 해도 얼른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치원 졸업식을 끝내고 초등학교 입학식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새롭게 만날 친구들과 선생님이 겁난다고 했다.
불현듯 옛날의 내가 다시 떠올랐다. 우리 딸이 나와 같은 전철(前轍)을 밟을까 걱정되었다.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둘째의 마음을 다독이고 안심시키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뿐이었다. 학교가 유치원보다 더 재미있을 거라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학교를 그렇게 느낀 적이 없는 탓이다. 대신, 학교에 가면 새롭고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거기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둘째는 학교를 즐겁게 잘 다니고 있다. 입학식날 자리 배치를 했을 때 뒤에 앉아 있던 친구와 그다음 날부터 친해져서 지금도 절친으로 지낸다. 학교에서 하는 수업도 재미있고,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즐겁고, 급식도 유치원 때보다 맛있다고 한다. 입학식 전에 걱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옛날의 나를 우리 아이들에게서 마주하지 않고 내 기억에만 남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는 조금 한시름 놓았지만, 지난 3월은 나와 아내에게 하루하루가 걱정과 안도감을 오가는 날들이었다. 온전히 아이들의 하루에 우리의 하루를 맞췄다. 3월은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본인들도 모르게 몸이 긴장한다. 그리고 날씨는 또 왜 그렇게 일교차가 심한지, 긴장한 상태에서 조금만 무리하면 금방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3월 셋째 주쯤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열감기가 유행했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친구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온 신경을 쏟았다. 저녁에는 꼭 따뜻한 물을 마시도록 했고, 열감이 느껴지면 곧바로 체온계로 확인했다. 특히 첫째가 환절기만 되면 비염이 심해서 밤마다 코막힘으로 고생했다.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게 돼서 목도 같이 아팠다. 그러면 깊이 잠들기가 더 어려웠다. 잠까지 못 자면 더 아플까봐 가습기를 틀어 습도 조절에도 신경 썼다. 조금이라도 코가 덜 막히도록 하고 싶었다. 첫째가 뒤척이면 나와 아내도 같이 잠에 깨기 일쑤였다. 첫째의 신생아 시절을 오랜만에 다시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첫째도 둘째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아픈 곳 없이 잘 지나갔다.
밤에는 첫째를 살폈다면, 낮에는 둘째를 챙겼다. 첫째는 이제 학교에서 집까지 혼자서도 잘 온다(물론 지금도 아이가 원하면 데리러 간다). 그러나 둘째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집까지 오는 길이 낯설다. 그래서 둘째의 하굣길에 함께 했다. 4월인 지금도 그렇다. 아마 1년 동안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첫째가 1학년일 때도 꼬박 1년 동안 그렇게 했다. 2학년 때도 2학기 전까지는 매일 데리러 갔다.
하교를 같이 할 수 있는 건 새벽에 출근하고 12시 전에 퇴근하는 나의 업무 패턴 덕에 가능했다. 등교 시간 때에는 내가 회사에 있어서 같이 할 수 없어서, 하교만큼은 꼭 내가 하고 싶었다. 할 수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첫째 때도 그랬지만 둘째도 나와 아내가 데리러 와주길 원했다.
이제 초등학생도 되었으니 독립심을 키워줄 겸 혼자 오도록 하는 학부모분들도 있을 것이다.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싫어하지 않는 한, 그리고 내가 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한 데리러 갈 것이다. 나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내 아이와 손잡고 같이 걸을 날은 찰나에 가깝다. 둘째인 딸도 그렇지만 10살인 첫째도 아직 나와 손잡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본인이 먼저 항상 손잡자고 내민다. 아들임에도 살갑게 대해줘서 아빠로서 너무 고맙다. 아직까지는 아빠가 제일 잘생겼다고 말해주는 딸 덕분에 행복하다.
아이들이 크는 걸 보면 뿌듯하면서 동시에 아쉽다. 나와 포옹하는 것도, 같이 손잡는 것도,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하다. 여전히 내 눈에는 귀엽고 어리고 아기 같은데, 곧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떠올리면 울컥한다. 그래서 아이의 하루가 나의 하루인 지금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시간이 부족해져서 좋아하는 독서도 글쓰기도 운동도 시간을 짜내서 겨우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임을 늘 되뇐다. 아이의 하루가 나의 하루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