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을 의심하게 된 날, 나는 보호자가 되었다

파킨슨이라는 단어 앞에 멈춰서게 된 밤

by 오필리아

겉으로는
T인 척, 아닌 척
괜찮은 척을 하고 있어서
나도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 감정에도 점점 무뎌질 줄 알았다.



아빠는 아직 파킨슨병 확진은 아니다.
다만 파킨슨이 의심된다는 말과 함께
파킨슨 약을 처방받고 왔다.



그날 이후
잠을 자도, 하루 종일
머릿속은 파킨슨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동안의 아빠 행동들이
너무 많이 맞아떨어졌다.



그게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꽤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다며 걷기 힘들다고 하셨다.
그때 아빠는 병원을 찾기보다
안마기를 쓰고, 다리를 툭툭 때리며 버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가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작년에는
허리가 아파서 걷지 못하고
자꾸 앞으로 넘어진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허리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아빠의 걸음걸이를 보고서야
이상하게 모든 게 이어졌다.



요즘 아빠는
젓가락질이 힘들어졌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으며
보폭은 다리 길이보다도 더 좁아졌다.

그리고
앞으로 쏠리듯 넘어지는 모습.

그제야 알았다.



교과서에서 봤던
‘파킨슨병의 정의’ 안에
아빠의 행동들이 들어와 있다는 걸.

그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났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아서.
그리고 그 화살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왜 나는 몰랐을까.
학교에서 파킨슨병을 배웠고
임상에서도 환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정작 아빠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빠는 말했다.
자기는 이런 병 따위
다 물리칠 수 있다고.

종교적인 말들을 주문처럼 외우며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그말리온 효과일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어쩌면 그건
아빠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내가 덜 불안해지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를
예전만큼 자주, 깊게 보지 못했다.

외면은 아니었지만
외면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제
나의 보호자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고.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의 보호자라고.

그 말을 하고 나서
나는 오늘, 하나를 더 결심했다.



이혼 이야기는
무덤까지 숨기자고.
다른 지역에 일하러 간 걸로
말하자고.



아이러니하게도
40년 넘게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조현병을 앓는 엄마와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파킨슨병이 의심되는 아빠.

서로 다른 방향이지만
결국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문제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나는 언젠가는
내가 엄마, 아빠의 보호자가 될 날이
멀지 않다는 걸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세상의 풍파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다 보니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조금씩 구분하게 됐다.


뭐,
원래 인생이 그런 거잖아.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다가 문득
아빠의 인생을 떠올리니
가슴이 찌릿찌릿 아팠다.


아마도
괜찮지 않았던 건
그동안 내가
너무 잘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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