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언어를 잊은 대화들
분명 같은 말을 했는데, 왜 서로 못 알아들을까?
일상에서 자주 느낀다. 상대의 말이 머리엔 닿는데 가슴엔 닿지 않는다. 이것이 언어의 불일치다. 마음이 닫히면 언어도 막힌다.
최근 '시끄러워'가 '이야기 같아'로 감각이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예전엔 시끄럽다고 넘겼던 음악이 귀에 박혔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TV에서 본 비트박서 윙의 퍼포먼스가 뇌리에 남아 있었다. 알고 나니 소음도 메시지가 되었다. 낯설던 것이 친숙해졌다. 좋아하려면 먼저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좋아하면 알게 될 거야." 그런데 실제는 다르다. 알게 되어야 들린다. 그 후 듣다 보면 좋아진다. 사람도 그렇다. 그의 과거, 말투의 이유를 알게 되면 그가 하는 평범한 말도 특별해진다. 아는 만큼 들린다.
그런데 알아가기에는 방해요소가 많다. 세상은 온통 소음이다. 거기에 내 마음의 소음까지 더해진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먼저 나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나는 이 사람을 알려고 노력했나?"
귀는 늘 열려 있지만 마음은 쉽게 닫힌다. 마음을 열기 전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열자. 소음을 차단하고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을 준비의 시작이다.
사람을 알고 나면 그의 말이 다르게 들린다. 말에서 상처와 애정이 느껴진다. 말투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게 된다. 관계는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듣는 힘’은 그 사람을 알려는 의도에서 생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 거기에 호기심을 더해 표현하는 것이 진짜 소통 아닐까?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더 매력 있다. 진짜로 듣기 위해선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말속에 숨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논리보다 진심을 들어야 한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는 코치다. 누군가의 말속에 숨은 ‘말하지 않은 말’을 듣는 일이 본업이다. 이걸 기술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사람을 향한 관심과 연습에서 온다. 삶도 마찬가지다. 관계가 깊어지는 지점에는 언제나 잘 듣는 태도가 있다. 더 많이 듣고, 더 깊이 알 때 소통이 가능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말이 오간다. 그중 마음에 닿는 말은 얼마나 될까? 오늘 하루, 누군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귀를 기울여보자. 마음을 연 만큼 그 사람의 목소리가 깊이 들릴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 누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가요?
오늘도 溫데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