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을 ‘기적’이라 부를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이 시간에, 하필 이곳에서 그를 만났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 우연에 감탄하고, 시간이라는 흐름이 데려다준 인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어느새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끌림에 취한다. 하지만 관계의 진짜 시작은 어쩌면 그 설렘이 사라진 이후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누구를 만나는지 결정하고,
마음은 누구를 원하는지 결정하며,
행동은 누가 남는지 결정한다.
- 지아드 압델누르
나는 망설임 없이 마지막 ‘행동’을 택하겠다. 운명은 문을 열어줄 뿐이다. 그 문을 지나 관계를 이어가는 건 나의 몫이다.
곱씹어보면 만남(시간)과 끌림(마음)은 꽤 수동적인 영역이다. 애쓰지 않아도 인연이 닿기도 하고 의지와 무관하게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며 낭만적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누가 남는가’의 문제, 즉 행동의 영역은 전혀 다르다. 이곳에는 낭만보다 훨씬 더 냉정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상대를 존중할 수 있는가.
감정이 끝까지 치솟은 순간에도 말의 가시를 다듬을 수 있는가.
내 불편함보다 상대의 평온을 위해 한 번 더 멈출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운이 아닌 철저히 선택된 태도의 결과다. 그리고 반복된 행동이 만들어낸 하나의 ‘실력’이다.
어릴 때는 인연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줄 알았다.
“우린 인연이 아니었나 봐.”
그 말 한마디로 관계의 끝을 설명하고 책임을 어딘가 먼 곳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관계가 끝난 이유는 운명이 다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끝까지 품어낼 만큼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만남은 운 좋게 시작될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오는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는 기회니까. 다만 그 사람이 내 곁에 머물게 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행동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핑계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났다면 그 이유는 운명이 아니라 내 태도가 그를 밀어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바람만으로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할 때다.
나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을 지켜낼 태도를 갖추고 있는가.
시간을 데려오고 마음이 선택한 사람을 내 서툰 행동으로 놓치고 싶지 않다. 관계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가 아니라, 내가 매일 닦고 조여야 함을 다짐한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내가 보여온 행동의 결과일 테니까.
만남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