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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사이, 아이패드를 꺼내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하고자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저항감이 적은 일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단 5분의 시간만이 주어져도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에든 쓱쓱 그려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날은 귀찮아서 미루고 또 미루는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눈은 높은데, 손은 그 시선의 높이에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초보자임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이러니하게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음을 안다. 어떤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은 부족한 자신을 매일 마주하는 행위이기에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그러하겠지만 시간을 들일수록 그림은 더 완성도 있어진다. 간단히 그리려던 그림은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간을 들일수록 그림이 조금씩 더 나아지기에 멈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림에만 무한정 시간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시간을 정해두고 그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결과물을 내는 힘, 절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그림을 선이 아닌 면으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매일 하는 행위일지라도 조금씩 변화를 주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떤 부분에서 나아지고 있는지, 어떻게 나아졌는지를 알아차릴 수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노력하고 있는지 의식하려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림을 면으로 표현하는 것은 선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임을 알아차린다. 색의 미세한 경계를 볼 줄 아는 관찰력이 요구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볼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음을 느낀다. 스스로 어느 정도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는 지금이 좋다. 이렇게 매일 그리다 보면 처음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나아졌듯이 내일의 그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은 모습일 것임을 믿는다.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음을 매일 인지할 수 있는 행위가 있다는 것은 내게 생각보다도 더 큰 에너지를 준다. 오늘도 나는 나아가고 있다. 그 사실에 충만한 에너지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