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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Oct 01. 2023

해외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어렸을 때, 내게 명절이란 사실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많다. 집안의 첫째 며느리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매 해 명절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과일을 깎았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옅은 미소만 남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서 설거지를 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앉아 웃고 떠드는 거실과 반대로 주방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들을 어머니는 혼자서 묵묵히 물로 헹구고 있었다. 결국, 몇 해가 지나고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큰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날 이후, 새로운 전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아버지는 명절에 우리 모두를 데리고 공기 좋고 물 좋은 양평의 어느 한 호텔로 향했다. 산속 안에 위치한 호텔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큰 집에는 왜 안 가는지, 친척들은 왜 안 만나는지 등의 질문들은 굳이 하지 않았다. 편해진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나니 가족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린 아버지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양평 숲 속에 위치한 호텔은 우리가 매 해 명절마다 찾는 숙소가 되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그동안의 어머니의 고생과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전통으로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동안 마침내 어머니의 밝고 환한 웃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랜 전통과 딱딱한 규율로 불편한 명절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명절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남동생 4명이 앞으로의 명절도 함께 소소하고 즐겁게 보낼 줄 알았지만, 내가 해외로 떠나면서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


A hotel in the middle of the mountains


1. 호주 퍼스, 처음 혼자서 명절을 보낸 곳

Where I first spent Chuseok alone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생애 처음으로 추석을 혼자서 보냈다. 사실, 혼자 추석을 보냈다고 하기보다는 늦은 밤까지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설거지(Dishwasher) 일을 하는 중에 어머니의 문자 메시지를 보고 오늘이 추석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밥은 먹었니? 한국은 추석인데 주변에 추석 음식 먹을만한 한인 식당은 없니?" 순간,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추석 음식이 생각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들이 밤늦게 까지 설거지했다고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요. 여기도 한인 식당 있는데, 좋아하는 김치찌개 맛있게 먹었어요."


매니저: Hey, Chris! Are you okay? You crying?

크리스: No, I'm okay! I got dish soap in my eye.

매니저: Be careful! You're almost done for today! Are you hungry?

크리스: YES! Yeah, I'm kind of hungry a bit.

매니저: Alright, let me get you something later when you are done.

크리스: Really? What?

매니저: It's a surprise! See you at the front when you are done!

크리스: Okay, cheers!


넓은 주방의 식기를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환복을 했다. 가방을 메고 레스토랑을 나오기 전에 프런트에 있던 매니저가 내게 랩으로 꽁꽁 씌운 바비큐립을 건넸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그녀의 미소와 친절을 계속 거절하기는 미안해서 받았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랩을 벗기고 바비큐립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추석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갈비찜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맛만 보려고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모두 다 먹어버렸다.


레스토랑에서 집까지 1시간 걸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해외에서 혼자 보내는 명절도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네" 물론, 어머니의 추석 음식과 가족들이 보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명절에 혼자여서 그런지 이상하게 편했다. 명절 안부 전화나 문자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물론, 오늘 하루 종일 일만 하면서 추석을 보냈지만, 워낙 노는 것도 잘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바쁘게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성격에 더 잘 맞았다. 다행히도 레스토랑 매니저 덕분에 갈비찜이 생각나는 바비큐립으로 나름 추석 분위기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Barbecue ribs that taste like Galbijjim


2. 미국 플로리다, 일과 함께 명절을 보낸 곳

Where I spent Chuseok with work


미국 대학원 시절, 전공수업 듣고, 과제하고, 연구하고, 회의하고, 논문 쓰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일만 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점심은 매일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와 감자칩을 사서 바로 연구실로 돌아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계속 일을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공 수업을 듣고, 오후 6시부터  2시까지 실험실에 갇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작성했다. 새벽 2시쯤에 연구실에서 나오면 덥고 습한 플로리다의 공기와는 사뭇 다르게 차갑고 신선한 새벽 공기가  좋았다. 나름 오늘 하루도  살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캠퍼스 길을 따라 곧장 기숙사로 향했다.


바쁜 미국 대학원 시절에도 추석은 또 찾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어머니의 문자 덕분에 추석이란 것을 알았다. "아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한국은 추석인데 요즘도 많이 바쁘니?" 순간,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추석이 생각났다. "그럼요! 많이 바쁘지만, 밥 잘 챙겨 먹고 있어요. 동생은 잘 있죠?" 역시 처음이 가장 어렵지 이후에는 조금 괜찮았다. 그렇게 나름 씩씩하게 가족들과 추석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습관처럼 내 몸은 다시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교수님: Chris! How's work going? You're working late again today.

크리스: Yeah, professor. Work is fine. I just need to do more experiments for the paper.

교수님: Oh really? What experiment are you working on now?

크리스: Well, I'm working on electroplating right now, and I'm doing it at different currents to get it to the thickness I want.

교수님: I see. Have you checked out the references?

크리스: I did, but the experimental conditions are different and the thickness I want isn't included in the reference, so I'm redoing it.

교수님: Really? Sounds like it will take a long time.

크리스: Yeah. That's what I thought, too, but I thought I could better understand the experiment and write a better paper.

교수님: Alright, that sounds great to me! Keep up the good work, Chris!

크리스: Thanks, professor. I'll get back to you soon with questions.

교수님: My office is always open to you!

크리스: Thank you so much :)


추석 안부 인사를 하는 것처럼 교수님과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  차례 열띤 토론을 펼쳤다. 가끔은 이렇게 동료처럼 친구처럼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 교수님과 함께 편하게 말하다 보면 가끔 새로운 아이디어도 받고 동기부여도 받아서 기분이 았다. 비록 실험실 안에서 혼자 추석을 보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지금과 그것을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매번 실패하는 실험과 연구에 덤덤해지는 것처럼 이제는 해외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것에도 자연스럽게 덤덤해졌다.


Sandwiches and chips for lunch every day


3. 미국 테네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명절을 보낸 곳

Where I spent Chuseok with new people


통번역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파견 근무 의뢰가 들어왔다. 전자/전기 엔지니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통번역사를 의뢰한 미국 내 한국 회사와 화상 면접을 보았다. 주요 업무는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번역하는 업무였다.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과 처우 조건이 괜찮았기 때문에 회사가 위치한 미국 테네시로 떠났다. 회사에는 많은 한국인들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거의 모든 것을 통번역하고 한국인들에게는 영어를 가르치고,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업무도 함께 수행했다.


다행히 전자/전기 엔지니어 업계의 회사 업무였기 때문에 통번역의 주요 업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알려주고 함께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이드 업무도 재미있었다. 오히려 함께 영어를 공부했던 한국인 분들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했던 외국인들이 고마워하여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 있어도 한국 회사라서 그런지 추석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밥 잘 챙겨드시죠? 이번 추석에도 따뜻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한국 들어가면 만나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어머니께 추석 안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잘 지내고 있지? 너도 항상 밥 잘 챙겨 먹고. 거기 동네는 좀 어떠니?"


외국인 직원: Chris, we're going to a Korean restaurant after work, do you want to come?

크리스: Really? Do you know Chuseok?

외국인 직원: Of course, I know. It's kind of like Thanksgiving, right?

크리스: Yes, you are right! How did you know that?

외국인 직원: Well, we learn not only Korean but Korean culture!

크리스: Good for you. So, do you like Korean food then?

외국인 직원: Oh, yeah! I love Korean food! My favorite Korean food is...

크리스: Don't tell me yet! You'll show me later! I'm down to go to a Korean restaurant.

외국인 직원: Okay! I'm already excited to show you my favorite Korean food!

크리스: That's really good! Okay, I'll see you after work!


업무가 끝나고 한국인 직원들과 외국인 직원들이 모여 함께 한국 음식점을 방문했다. 한국인 직원들은 한국인 음식점 사장님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외국인 직원들은 너무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삼겹살, 갈비,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리고 10가지 정도 되는 반찬까지 오랜만에 보는 정이 넘치는 밥상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사장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전과 송편을 후식으로 주셨다. 동태포와 동그랑땡을 보는 순간, 어머니의 추석 음식이 저절로 생각났다. 이번 명절에도 해외에 있었지만, 혼자가 아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Korean comfort food for life


4. 한국,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낸 곳

Where I spent Chuseok with my family


나와 남동생, 형제가 모두 30대가 지나고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추석 명절을 보냈다. 각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이 사실 쉽지 만은 않았다. 지난 8월 달부터 가장 바쁜 남동생과 일정을 조율했지만, 사실 추석 이전 주까지 "이번에 또 못 모이면 어떡하지?"라고 고민하면서 긴장했다. 약속했던 일정 보다 한참 늦어진 시간이었지만, 마침내 온 가족이 모두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전날부터 열심히 만든 추석 음식들을 부랴부랴 차려주셨다. 전 세계 맛집이란 맛집들을 자주 다녀본 탓에 이놈의 입 맛이 한참 고급지게 되었었지만, 어머니의 집밥 앞에서는 저절로 다시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간다. 맛있다. 그냥 맛있다. 여러 가지 추석 전도, 잡채도, 김치도, 삼계탕도, 이것저것 계속해서 자식들 먹이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제는 너무 사랑스럽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많이 바쁠 텐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크리스: 괜찮아요. 더 자주 올게요.

어머니: 사실, 이번에도 아버지랑 둘이서 명절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너희가 오니 너무 행복해.


물론, 오랜 해외 생활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향수병, 낯선 곳에서의 생존 본능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러한 다소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도 언제나 스스로 멘탈을 부여잡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가족이었다. 특히, 낯선 타지에서 집을 구하고, 일을 찾고, 일상을 보내면서 그동안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했던 노력과 헌신 그리고 희생에 대해서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자식을 위한 부모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희생이 당연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해외 생활을 통해서 보았던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 부모의 이혼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 부모와 자식의 불편한 관계에서 그동안 우리 부모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크리스: 그동안 우리를 잘 보살펴 주셨으니까, 앞으로는 우리가 더 잘 보살펴 드릴게요.

어머니: 말이라도 참 고맙다.

아버지: 그래..


나는 좋은 아들이 아니었다. 없는 형편에도 부모님은 자식들 기죽이지 않게 자식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다 해주었다. 그러한 속사정도 모르고 어린 나는 모든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오랜 해외 생활로 변한 차갑고, 이기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에도 많은 상처와 아픔을 받았을 텐데, 부모님은 언제나 내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옆에 있어 주셔서 그저 감사하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높이 성공하기 위해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렸던 어린 날의 인생에서 아픈 상처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크게 성공하려고, 성공이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준다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없다면 과연 이러한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가족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인생에서 일이 언제나 최우선 순위에 있었던 내게 가장 큰 변화였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면서 가족과 함께 좋은 곳으로 여행도 많이 가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 것이다. 가장 사소하게 매주 주말에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부터 앞으로 더 많이 가족들을 챙길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두 남녀가 나라는 아이를 가진 순간, 그들이 나의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나는 너무 감사하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네가 우리 자식이라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나 또한 앞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가족들을 위해 살 것이다.


사랑합니다.


해외에 가족, 친구, 지인이 있다면 사실 큰 어려움 없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맛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해외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지인도 없다면 사실 해외는 그저 낯설고 매번 새로운 것을 보고 맛보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곳만은 아니다. 특히, 설날, 추석, 연말에는 더욱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깊어진다.


나도 처음에는 향수병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멘탈이 약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해외에 오래 살다 보니 향수병이 무엇이고, 이게 도대체 왜 오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언어적인 장벽도 큰 요인이지만, 그 이외에도 문화, 인종, 주위의 환경과 사람들 또한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어찌 보면 향수병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병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면 처음에는 편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다짐한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반드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에게 내가 더 잘해야지" 타지라는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명절을 혼자 보내는 것은 달면서도 씁쓸한 경험이다. 다행히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나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온 가족과 함께 보낸 추석이 굉장히 뜻깊고 행복하다. 앞으로도 명절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해외에서 혼자 명절을 보낸 경험 3가지

1. 호주 퍼스, 처음 혼자서 명절을 보낸 곳
2. 미국 플로리다, 일과 함께 명절을 보낸 곳
3. 미국 테네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명절을 보낸 곳




Family always comes first.

언제나 가족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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