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준비 없이 떠난 여행
네팔 지방정부의 공무원분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함께 일하는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2시간가량 오프로드를 달렸다. 산길을 달리며 마치 체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점점 시골로 들어가고 있었고, 경사가 급한 구간에서는 뒤로 떨어질 것만 같아 내려서 걸었다.
공무원과의 미팅 이후,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좀 더 외진 지역을 방문해야 하는데 바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수도에 갔다가 다음날 갈 것인지. 이미 두 시간을 왔고, 나의 귀국일도 얼마 남지 않아 시간 여유가 많이 없던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산간 오지에서 일박을 하기로 정했다.
차를 대절했고, 산간지방의 오프로드를 한참 달렸다. 도착한 곳은 전기도 안 들어오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옷은 땀으로 젖었고, 제대로 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었고, 화장은커녕 바를 로션이나 선크림도 없었다. 칫솔만 겨우 구해 양치를 했고, 산골에 매점을 겸하고 있는 곳에서 하루 민박을 했다.
저녁을 먹으며 동행한 일행과 중간에 합류한 동네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다들 내 질문에 신이 나서 대답을 하고, 다음 질문을 해달라고 기다렸다. 네팔에 와있는 동안 따로 코칭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럴 때면 내가 어디에서든 코치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민박집 아이가 숙제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전기가 안 들어와 촛불과 전기모기채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교과서를 펴서 숙제를 했다. 그 전기모기채를 들어 숙제하는 아이에게 비춰주며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미니멀한 생활, '멈춤'의 시간
큰 캐리어를 가지고 왔지만 부탁받은 짐을 빼고 나면 개인짐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옷은 기능별로 두 벌씩. 잠옷 두 벌, 긴 남방 두 벌, 긴 바지 두 벌 이런 식이다. 하루, 아니면 이틀 먹을 만큼 감자 하나, 양파 하나, 토마토 하나를 구입한다.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지도 않고, 전자레인지도 없다. 전기가 나가고, 샤워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물이 끊기기도 한다. 이럴 때면 자연히 '멈춤'의 시간이 된다. '빨리빨리'와 조급한 마음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숙소는 6~7 가구가 같이 마당을 공유하는 곳이었는데 밤 10시만 돼도 모두 불이 꺼지고 잠자리에 든다. 평소 자정까지 노트북 앞에 있거나 잠자리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던 생활은 이곳에서는 없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많은 것들을 덜어내고 지냈다.
싱잉볼세트를 선물 받다
네팔에서 친구의 권유로 싱잉볼 레슨을 들었다. 레슨을 들은 후, 지나가는 말로 “나 싱잉볼 세트를 사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이번에 말고, 다음에 오면 살게.”라고 친구에게 말을 했다. 그런데 떠나오는 날, 숙소에 가서 짐을 챙겨야 하니 빨리 일어나겠다는 나를 친구들이 자꾸 막는다. 알고 보니 사실 떠나는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 싱잉볼세트를 주문했다는 것. 싱잉볼에 내 이름을 새기려고 따로 주문했는데, 이름을 새기다 문제가 생겨 다른 싱잉볼로 대체하느라 배달 오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서프라이즈로 하고 싶었는데 내가 자꾸 숙소에 간다고 하니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싱잉볼세트를 선물로 받았다.
떠나는 날, 친구 두 명이 바쁜 시간을 쪼개 공항까지 배웅을 와줬다. 혼자였다면 꽤나 곤혹스러웠을, 나의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주었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챙기니까, 너 스스로를 챙기는 걸 제일 먼저로 해. 그리고 걱정 많이 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내가 타고 간 비행기라며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 사진을 보내오는 친구. 그런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동네 카페에 와서 그동안 잘 마시지 않았던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당장 이번주에는 한 기업의 외국인 임원코칭, 한국 기업에 인턴을 온 미국 대학생들의 팀빌딩 워크숍,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강사 미팅이 예정되어 있다. 영어로 진행하는 코칭과 워크숍은 평소보다 몇 배 더 긴장이 되고,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배가 된다.
'네팔에서 받은 마음들을 잘 안고, 한 주의 일도 잘 해내야지.'
다 잘 될거라는 친구의 말을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