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환경의 변화가 주는 심플한 일상
함께 지내던 분들이 한국에 돌아가신 후, 호텔에서 지내던 생활을 마치고 시내 주택가의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옮겼다. 늘 수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들락날락하던 호텔 1층 로비와 식당에 주로 머물렀는데 조용한 주택가의 숙소 전체를 혼자 쓰게 된 것이다. (삼 일 후에는 옆 방에 다른 게스트가 들어왔다.)
환경의 변화는 일상을 꽤나 심플하게 만들어주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오전 8시쯤 친구의 주스바에 가서 주스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 혹은 다음날 먹을 만큼 한 두 개의 과일을 샀고,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다. 호텔에서 한 번 정도 세탁서비스를 이용했지만 거의 매일 손빨래를 했던 것과 비교하니 세탁기가 주는 편리함이 너무 컸다.
어느 날 저녁에는 세 명의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여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소박한 시간들을 보냈다. 이웃에는 꼬마들이 많이 살고 있어 공동으로 쓰는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한 두 마디의 영어로 인사를 나누며 친해지기도 했다. 하루는 한국에서 가져온 짜파게티를 끓여 6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줬는데 다들 맛있다고 그릇을 금세 비웠다. 에어비앤비 주인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는 거대한 크기와는 다르게 살포시 다가와 몸을 기대곤 했다.
계속했던 루틴, 코칭영어클럽
해외에 나와있고 시차도 차이가 있다 보니 한국에서의 루틴을 그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오전 시간에 코칭영어클럽에 카톡으로 '오늘의 단어'를 올리는데, 시차가 있다 보니 이곳에서는 일찍 일어나 움직여도 한국의 점심시간이 되고는 했다. 그래도 아침에는 일어나 그날 분량의 영어낭독을 녹음해 올리고, '오늘의 단어'도 올렸다. 주말에는 그 주의 낭독영상을 만드는데 네팔에서 틈틈이 찍어둔 영상을 활용해 낭독영상을 완성하기도 했다.
"너의 'and'가 기대된다"는 말
하루는 유럽에 있는 코치인 친구와 줌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차가 바뀌다 보니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저녁시간이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오후시간이었다. 친구의 메시지에 깜짝 놀란 나는 밖에는 일을 하던 중이라 바로 줌미팅 할 수 없었고, 친구가 이해해 준 터라 시간을 옮겨 숙소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마침 숙소는 전기가 끊어져 휴대전화의 핫스팟을 이용해 서로의 근황을 나눴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근황을 이야기하며, '아 그리고'라고 말을 이어갈 때, 화면 너머의 친구가 말한다.
"그래, 'and(그리고)' 또 뭐? 네가 'and'라고 말할 때마다 기대되더라."
말을 이어가며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and'를 말하곤 했는데 나의 'and'를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어딘가 뭉클하다. 서로의 일상,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 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나 보다.
"너 지금 우는 거야?"
"아니, 안 울어. 그냥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야."
"허, 내가 아름다워서라니!"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메신저로 서로에게 하트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낸다. 서로의 일상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 다른 나라에 살고, 한 번도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2년 넘게 꾸준히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 말을 안 했는데, 너는 나를 잘 아니까.'라며 나에게 하려고 말을 아껴두었다는 그녀. 좋은 날에도, 좋지 않은 날에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어 무척이나 감사하다.
오늘은 쉬어갑니다.
여행자가 아닌 '출장자'이기에 나는 다른 것을 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주간에는 맡고 있는 프로젝트 의 일,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는 한국에 두고 온 코칭과 관련된 일들, 매일 하고 있는 '코칭영어클럽'을 비롯해 어딘가로 메일을 보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일은 계속 밀리는 느낌이었고, 그 일들이 머릿속 한편을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7시에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친구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뭐 해? 나 00랑 저녁 먹으러 가려는데 너 나올래?"
"음.. 글쎼.. 나는 지금 일하는데 일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너는 무슨 24시간 일하니?"
분명 나보다 훨씬 더 바쁘고 더 많은 책임을 맡고 있는 친구의 그 말에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한 베트남 식당에 갔다. 바쁜 친구들이 내가 네팔에 와있는 동안 시간을 만들어 어떻게든 밥 한 끼를 더 함께 하려고 하는데 나는 해야 할 온갖 일을 걱정하며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팔에서는 보통 주 6일 근무로 토요일이 쉬는 날이다. 그래서 토요일 하루를 아예 '쉬는 날'이라고 혼자 선언했다. 친구는 나보고 코칭을 하니 사운드 배스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며 싱잉볼 코스를 권했다. 예전부터 배워보고 싶어 흔쾌히 좋다고 했더니 레슨을 알아보고 예약까지 잡아줬다. 그래서 쉬는 토요일 오전, 나는 타멜에 있는 한 요가원으로 가서 싱잉볼 레슨을 들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한국에서 네팔로 파견 나와있는 J 선생님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이전 출장에서 선생님이 일하는 곳을 방문할 계획이 있어 뵙게 되었는데 다음에 오면 밥 한 끼 하자는 인사를 건넨 터였다. 그제야 여유가 생겨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바로 약속을 잡았다. 일본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익숙한 음식을 먹었고, 한국어로 수다도 떨었다. 한국과 네팔의 문화차이 같은 것들, 정보를 공유하거나, 서로의 일에 대해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주스바의 테라스에 앉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가는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