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약봉지를 손에 쥐고

2년 만에 다시 찾은 병원

잠잠하던 공황 증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조금 지나면 다시 잠잠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다 그 빈도가 늘어나고 주기가 짧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오늘 2년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반갑습니다. 2년 만에 다시 오셨네요. 반갑다고 인사를 드리긴 했는데, 반가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셨으면 찾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의사는 2년 사이 다시 몸과 마음이 조금 더 무거워진 나를 보며 약간은 안쓰러운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3년 전 나는 입원 권고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우울증과 함께 찾아온 폭식증은 이내 1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나의 체중을 30kg이나 불려버렸다. 몸과 마음이 내가 온전히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버겁게 느껴졌다.


심장이 조여 오고 숨이 막혀 기절할 것 같은 공황 증상을 여러 번 겪고 나는 억지로 그 무거운 나 자신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잘 모르겠어요. 별로 우울하진 않은데요. 저는 그냥 잠만 좀 잤으면 좋겠어요. 상담 같은 건 안 받아도 되고 다 괜찮아요. 제발 약을 처방해 줘서 그냥 잠 좀 자게 해 주세요."


내가 겪고 있던 마음의 병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치 제삼자의 고통을 묘사하듯 건조하게 뱉어대는 내 말을 의사는 유심히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집에 가시는 길에 어떻게 되어도 즉,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우울과 불안수치입니다. 제 여동생이었다면 강제 입원 조치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에요."



'내가 우울증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나의 병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극도의 우울증, 불안증, 공황 장애 진단을 받고 난생처음 처방받은 정신과 약봉지를 손에 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후 꾸준히 약물과 상담 치료를 받았고, 정말 다행히 1년이 채 되지 않아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여 약 복용량을 줄여 나갔고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몸무게도 덩달아 12kg이 줄었다.


하지만 2년 사이 나는 다시 무거워졌다. 몸도, 마음도.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황이란 뭘까? 절대 이 증상이 나오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넜고 그 건너온 다리를 불태워버린 느낌이다.'


2년 전 마지막 상담 때 많이 좋아진 나를 보고 정말 환하게 웃어주던 의사 앞에 다시 앉아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왜 다시 공황 증상이 시작되었는지, 2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여기 다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사는 줄곧 "그러시군요.", "많이 힘드셨겠는데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저 같아도 화날 것 같아요."와 같은 말을 해주었고, 특히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닌 '충분히 그럴만했다'는 것을 이해받고 나니 아주 내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훅 하고 치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2년 만에 만난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2년 전 그때처럼 다시 낯설어진 약봉지를 들고 건물을 나섰다.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그래. 다시 일어나 보자.'



그렇게 낯선 약봉지를 손에 쥐고 다시 걸었다.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