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펴서 세는 연습
독감이라는 녀석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거의 10일 가까이를 앓아누웠다.
강제로 셧다운을 시키지 않으면 좀처럼 쉬지 못하는 나는 사실 내심 이참에 잘 됐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겨우 찾아온 이 멈춤의 순간에도 가슴속은 바빠서 불이 난다. 불안하고 조급하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되나?'
아플 때 조차 마음 불편하게 쉬고 있는 나를 보면 '나는 대체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몸도 같이 물에 푹 적신 목화 이불 마냥 무거워진다. 또 한 없이 힘 빠지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냥 다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일상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밥을 차리는 것도, 밥을 먹고 치우는 것도, 잠자리에 드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꼼짝하지 못할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몸은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우성인데 마음은 또 혼자 날뛴다.
'이것도 해야지. 그리고 저것도 해야지.'
'오늘 해야 할 것 중에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네.'
'내일은 또 이걸 하고 저걸 하고...'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어느새 스스로에게 질려버린다. 이럴 때면 '어우 지겨워'라고 말하며 두꺼비집을 내리듯 내 머릿속 전원을 내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버크만 진단을 받고 첫 코칭을 받았다.
거의 만 점 가까이 나온 나의 [흥미] 영역은 [사회복지]라고 한다.
이 진단에 따르면 나는 누군가 상담하고 봉사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을 돕고 지지하는 것에 엄청난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코치는 나에게 지금 하는 일이 나의 흥미 영역과 많이 일치하며, 그 이유 때문에 아무리 힘이 들어도 큰 보람과 재미를 느끼며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 높게 나온 영역이 '설득'인데, 이건 사람들 동기부여 하고 뭔가를 판매하고 설득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뜻한다고 한다.
내가 제일 흥미를 느끼는 영역에서 일하고 사업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게 나의 역량과도 일치할지는 다음 세션 코칭 때 알 수 있겠지만. 암튼 나를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아주 조금은 나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지지하고 그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에게 이것이 왜 의미가 있지?'
그냥 나 혼자 잘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이미 나는 너무 지친 상태인데 나는 왜 또 힘들게 누군가를 돕고자 할까. 늘 마지막엔 나에 대한 의문으로 끝난다.
나는 왜 매일 이렇게 힘들게, 최선을 다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일까.
그냥 편하게 살 순 없을까?
오늘 또 링크드인에서 또 누군가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목격했다. 금방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한참 뒤에서 다리를 질질 끌며 겨우 걷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 태어나 이 판을 뒤집지 않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또 세상에서 한 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남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각자가 각자의 모양과 방향이 있는 거니까. '나도 나름의 쓸모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된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레이스를 하는 것이다. 따라잡을 이유도, 같은 길로 꼭 가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나의 모양대로, 나의 방향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생각을 전환해 보려 애쓴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아니, 소용이 있다.
이런 것 즉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 그것이 모여 나의 삶이 된다. 나의 삶은 소중하다. 곧 '이런 게' 값진 것이다.
일상이 주는 행복과 평안을 잊고 지냈다.
다시 손가락을 펴고 세자.
내게 주어진 행복을, 내가 누리는 평안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그래도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나를.
하나씩 세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이미 내가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 다시 시작해 보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