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시작은 자기 연민
나는 속해 있지만 온전히 속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나는 머물러 있긴 했지만 온전히 머물지 못했다.
뿌리내리고 싶었지만 좀처럼 뿌리가 내려지지 않았다.
사람들과 있으면 종종 아니, 자주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진심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지만 그건 나에게 너무 힘든 과제처럼 느껴졌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왜 저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어우, 또 험담 시작됐네. 지겹다.'
'이 시간에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겠다.'
'다음 주 일정 준비는 언제 하지.'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진짜 바보 같다.'
이렇게 마음이 한없이 겉돌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소외감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나의 생각과 마음은 그렇게 그 순간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떠돌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자책하고 불안해졌다.
최근 '성난 파도 다스리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존'
현재에 존재한다라. 걱정과 불안에 항상 둘러싸여 있던 나에게 현존이란 형체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아무 걱정 없이 현재에 온전히 존재한다고? 그게 가능해?'
불안으로 인해 잠 못 들던 수많은 밤들,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한 과로,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30kg 가까이 늘어나버린 몸무게
멈춰 설 줄 몰랐던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강제로 멈춰 서게 되었다.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번아웃이었다.
그렇게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고 무기력하게 방에만 누워있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하루는 나는 엉망이 되어버린 내 마음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알아내야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심리학, 뇌과학, 자기 계발 관련 서적을 50여 권 읽고 깨달은 하나는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끈질기게 통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통제가 되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쳤다.
'멘탈이 이렇게 약해서 어디에다 써먹을래?'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지.'
'네가 하는 게 그렇지 뭐.'
'정신 바짝 차려 좀.'
하지만 다그치고 조종하려 할수록 내 감정은 떼를 쓰는 아이처럼 더 발버둥을 치며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렇게 나를 회의적이고 냉담하게 때로는 매몰차게 대한 결과 나는 우울증이라는 지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책은 나에게 계속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여라]고 했다.
나는 그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으로 와닿지도,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스스로를 학대하던 못된 말들을 멈추자 조금씩 내려놓기와 받아들이기를 적용할 수 있었다.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현존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순간, 우리는 손이 아프도록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도 잘했어.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어.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나를 다독이는 것이 습관이 되자 나는 죄책감과 불안 없이 조금 더 자주 그리고 조금 더 길게 현재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바다에 닻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 순간, 이 소중한 경험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나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밀어붙이거나 가혹하게 굴지 말자. 안다. 자신과의 관계를 평생 나처럼 냉담하고 가혹하게 쌓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당신은 지금껏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았는가.
적어도 그 사실만을 스스로 인정해 주고 "애썼다." 말해주자.
이 한 마디가 '현존'의 시작이다.
자신에게 따뜻해지면 온 우주가 따뜻해진다.
그러니 오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그동안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