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것의 힘
"베알이 꼬인다."
실제로 이 표현을 내 몸으로 제일 먼저 느낀 적은 중학생 때였다.
발표회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다. 무대 뒤편으로 한 아저씨가 걸어왔다. 콧수염이 멋지게 난 그 아저씨는 같이 공연을 한 친구의 아빠였다. 그는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딸을 발견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성큼 걸어와 딸아이 볼에 입을 맞췄다.
그 순간 나는 베알이 꼬였다.
이후로 나는 종종 베알이 꼬였다.
교수 아빠를 둔 친구를 볼 때도,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볼 때도, 집에 지원을 받아 미국유학을 가는 친구를 볼 때도 그랬다.
부러움이 짙어지면 미움이 된다. 화가 나고 속상해진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 꼴이 더 볼썽사나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애써 '모른 척' 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화가 났다.
베알이 꼬일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고 싶어졌다. 에고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든 남의 흠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부려야 그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들 말한다. 질투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가?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무엇이 부족한지를 인식해야 돌발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을 의식한다. 슬프지만 인간으로 사는 이상 우리는 베알은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마흔 살이 된 지금도 가끔 베알이 꼬인다. 과거 내 행동에서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이런 감정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르르, 속에서 불이 올라오면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가만히 드려다 본다.
순간 나의 에고가 다시 머리를 든다.
'감정을 외면하고 상대를 깎아내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나는 그저 가만히 에고가 하는 말을 듣는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이 불안한 걸까. 이건 현재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에 이 감정을 느낄까?'
그러곤 차분히 내 마음에 말을 건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출발 지점부터 다른 것 같아 아무리 속도를 내도 결코 따라가지 못할까 봐 무기력하고 초조하는구나. 저 사람이 이룬 걸 너도 이루고 싶구나. 아, 더 잘하고 싶은 거구나. 그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
이 말을 들은 내 마음은 어느새 울음을 멈춘다.
우는 아이를 보기 힘들다고 안 보이는 구석으로 쓱 밀어버리면 아이는 큰 소리를 내며 운다.
그런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아이는 서럽다고 더 크게 운다.
아이를 바라봐주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면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친다.
이 아이는 우리의 마음이다. 외면하지 말고 그 울음을 알아차려 주면 우리 마음은 이내 고요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요한 마음을 가지면 그다음 취할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온전한 존재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속상하고 초조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결심할 수도 있다.
그러니 베알이 꼬여도 일어나자. 그리고 다시 걸어가자.
베알이 꼬여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걷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자.
오늘도 나는 우는 마음을 바라보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