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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직관이 필요하다. 그 조언의 뒷면에 대하여

직관은 실용적 도구가 될 수 있을까?

by 서소헌

논리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는 언제나 안전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선로를 벗어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리 계산해도 버그는 발생하고, 새로운 관점은 엑셀 시트 안에서만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벗어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감각이 바로 직관이라는 걸, 저는 여러 번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Trust your gut’ 이 흔한 조언이 왜 나에게도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고, 어쩐지 반감이 들까?

직관은 선형의 사고로는 잇지 못하는 두 점을 연결해주는 감각이기도 하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어딘가를 향하게 해주는 안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벗어남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그 이후를 감당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도 이르게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직관이 필요하다’는 당위보다, 직관을 말한 이후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글에서 다윈의 결혼 결정과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개발 이야기를 통해 논리와 분석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직관의 힘에 대해 나누었는데, 오늘은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직관을 따른 후, 그 책임은 어떻게 우리에게 돌아오는 걸까요? 제 경험을 통해 그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려 합니다.


미국에서의 창업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직관적인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10년을 조직에서 생활했는데 사업이라는 새로운 일을 그것도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시작했으니 나름 많은 분석을 했습니다. 사업 계획서도 작성했고, 시장 조사도 치열하게 했지요. 그렇지만 최종 결정의 순간에 저를 결정으로 밀어낸 힘은 '이건 해봐야 할 것 같다'는 강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업을 매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닥쳤고, 만약 그 시점까지 사업을 유지했다면 상상하기 힘든 손실과 실패를 경험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성공했을 때 '처음부터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불확실성 속에서 직관을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후견지명 편향'이라 부릅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에 마치 그 사건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합니다.


만약 실패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너무 감정적인 결정이었다" 혹은 "더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실패라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린 결정에는 ‘어쩔 수 없었지’, ‘최선을 다했잖아’라는 위로가 따라옵니다.반면, 직관을 따른 결정에는 ‘왜 그렇게 했어?’, ‘무모했지 않았어?’라는 말이 더 쉽게 붙습니다. 성공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데이터 기반의 성공은 조직의 시스템과 논리 덕분으로 여겨지지만,직관에 의한 성공은 때때로 ‘운이 좋았던 거야’라고 폄하되기도 하지요. 직관을 따른 선택이 성공하면 선견지명이 되고, 실패하면 무모함이 됩니다. 이런 이중 잣대가, 직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논리와 분석으로 내린 결정에는 항상 "모든 데이터를 검토했다"는 방패가 있습니다. 하지만 직관에는 그런 방패가 없지요. 그래서 'Trust your gut'이라는 말이 때로는 반감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관은 순간이고, 책임은 시간입니다. 직관은 빠르게 방향을 가리키지만, 그 길을 만들어 가는 여정은 길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미국 창업 경험에서 느꼈듯, 성공하면 선견지명이라 불리고, 실패하면 무모함이라 불리는 이중 잣대 속에서 직관의 가치는 쉽게 왜곡됩니다.


제가 경험한 가장 후회 없는 결정들은 직관이 이끌고 논리가 점검한 결정들이었습니다. 직관이 '예스'라고 말할 때 논리는 '어떻게?'라고 묻고, 그 대화 속에서 더 온전한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을 자신의 결정으로 받아들일 때, 직관을 따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완성됩니다. 결국, 직관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지만, 그 길을 만들어 가는것은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Trust your gut'이라는 조언의 진짜 가치는 논리와 선형적 사고에서 벗어날 볼 수 있는 시도와 용기, 그리고 그 후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결국 우리가 직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그 이후의 길에서 논리와의 발란스를 맞추며 선택에 대해 책임과 수용을 가지고 걸어갈 때 직관은 생각의 틈을 벌려줄 수 있는 실용적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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