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불확신할 걸 못 견디는 사람들&생각에 관한 생각
일주일에 한 번, 가능하면 동네 교보문고에 들르는 시간을 가집니다. 산책도 하고 새로운 책들도 둘러보는, 제 자신을 위해 지키는 소소한 의식 같은 거지요. 지난주에도 어김없이 서점을 찾았는데, 한 책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책을 집어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종결 욕구'라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빨리 명확한 답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요. 요즘 저의 모습을 콕 찝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고, 부모님의 건강, 저의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저는 모든 일에 서둘러 매듭을 지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결정하자', '어서 마무리하자' 하며 종결 욕구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던 거지요.
표현을 보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코칭하는 고객들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흥미가 생겨 한참을 서서 책을 더 읽어보니 이 종결욕구가 대니얼 카너먼의 사고 체계 이론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종결욕구가 창의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찬찬히 읽고 싶은 마음에 손에 들었던 책을 구매하여 집에 왔습니다.
책에서 소개된 사회심리학자 아리 크루글란스키에 따르면,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빨리 명확한 답을 얻고 싶어하는 이 마음을 '종결 욕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결욕구가 높은 사람들은 애매모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며, 한번 내린 결정을 잘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에서 크루글란스키의 연구를 소개하며 종결욕구가 낮은 사람일수록 창의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 제가 언급했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떠오른 부분입니다.
크루글란스키가 언급한 종결욕구를 더 잘 이해하기 하는데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사고 체계 이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카너먼 교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시스템1, 시스템2의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먼저 시스템 1은 자동 운전 모드에 비유되어, 빠르고, 직관적이며, 노력 없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마치 익숙한 길을 운전할 때 자동으로 핸들을 돌리는 것처럼요.
시스템2는 집중 모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논리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작동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정신을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높은 종결욕구와 카너먼의 '자동 운전 모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하고 빠른 답을 원할 때, 우리 뇌는 에너지 소모가 적은 자동 운전 모드를 선호하게 됩니다. 이 모드는 일상적인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데 유용하지만, 복잡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양한 가능성과 미묘한 차이들을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복잡한 상황에 대한 해결, 새로운 관점의 발견, 맥락에 대한 이해 등에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시스템 2의 사고가 요구되나 제가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종결욕구가 높아질수록 자동으로 익숙한 판단 패턴을 따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마치 늘 다니는 길만 선택하고, 새로운 경로는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 결과 창의적인 대안과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립니다. 생각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주니까요. 코칭을 하며 많은 분들과 대화하다 보니, 특히 세 가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1. 뇌는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합니다
코칭 세션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싶은데, 왠지 너무 피곤해요." 우리 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생각하는 에너지'를 아끼려고 하지요. 마치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앱을 닫는 것처럼, 우리 뇌도 '깊게 생각하기'라는 에너지 소모가 큰 앱을 자주 닫아버립니다. 결국 자동 운전 모드로 빠르게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지요.
2.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감
우리는 늘 마감시간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다음 주까지 결정해야 해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 답을 줘야 해요"... 현대 생활은 시간과의 싸움이지요.이런 환경에서는 신중하게 생각할 여유를 갖기 어렵습니다. 얼마전 코칭 세션에서 한 내담자는 "더 생각해보고 싶은데, 결정 시간이 너무 짧아요."라고 말했어요. 저도 너무 공감했답니다.
3.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유발합니다. 결정을 미루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심리적 불편함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이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참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 불안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빠른 결정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크루글란스키는 언급했던 책에서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종결 욕구는 불확실성을 포용하지 못하게 부추기고, 이렇게 되면 과거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직관했고, 현대의 연구에서 증명하는 것처럼 유연성과 창의성이 억눌린다.
-불확신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 아리 크루클란스키, 319p-
다르게 표현하면 유연성과 창의성의 발현을 위해서는 종결욕구를 낮추고 제가 이해한 것으로는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시스템 2의 사고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완의 상태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창의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천재적인 예술가이자 발명가였지만, 그는 결정을 내리는 속도가 느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느리다기보다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모나리자'를 예로 들면 다빈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후 16년 동안이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16년 동안 붓을 놓았다가 다시 잡고, 또 다른 실험을 해 보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수없이 그림을 고쳤습니다. 그가 그렇게 오래 고민했기에, 모나리자의 미소는 여전히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만약 다빈치가 조급하게 결론을 내렸다면, 지금과 같은 신비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전 글에서 저는 '선택의 불안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르트르가 선택지 앞에서의 불안을 '현기증'에 비유했던 통찰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자유가 때로는 불안과 조급함을 유발하기도 하지요.의도적이고 의지적인 시스템2의 사고가 피곤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결정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직관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 1적 사고는 많은 순간에 필요합니다. 하지만, 유연성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의도적이고 의지적인 사고, 즉 시스템 2적 사고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코칭을 하면서 고객에게 던질 질문 하나가 추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결정을 조금 더 미룬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이 결론이 정말 지금 당장 내려져야 할까요?" "우리가 조금 더 불확실함 속에 머물 수 있다면, 어떤 창의적인 가능성이 열릴까요?"
성급하게 매듭짓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사용할 이 질문 속에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잠시 머물러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을 미루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열린 질문을 가지고 머물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 더 나은 답을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마침 오늘 저희 아이들의 방학이 끝났습니다!! 이제 저도,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 보아야 하겠습니다.마음속에서는 저도 다빈치가 되기를 꿈 꾸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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