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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버그는 발생한다.직관이 필요하다.

당신의 중요한 결정은 논리였나요? 직관이었나요?

by 서소헌

"이게 정말 맞는 선택일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우리는 또다시 완벽한 답을 찾아 헤맵니다. 이직, 퇴사, 창업, 결혼, 채용 등...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늘 확실한 공식을 갈구하곤 합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모든 변수를 대입하면 정답이 나올 것이라 확고히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데이터와 분석 도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낍니다. AI, 기후변화, 팬데믹, 경제 불안... 우리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도 함께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확실성에 목마른 걸까요?

확실성은 안전을 약속합니다. 예측 가능한 미래, 통제된 결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을 줍니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고 카테고리화하는 데 능숙합니다. 혼돈보다는 질서를, 모호함보다는 명확함을 선호하지요. 우리는 이것을 '합리적 사고'라 부르며 찬양합니다.그런데, 정말 논리와 분석만으로 완벽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요?

인간은 운명의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측정하고, 비교하고, 견준다. 이성의 저울질은 우리의 본성이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해도 버그는 발생한다.
- Wild Problems, Russ Roberts

'이성의 저울질은 우리의 본성이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해도 버그는 발생한다'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으며 제가 무릎을 친 표현입니다. 정말 논리와 분석, 우리의 저울질만으로 완벽한 선택이 가능할까요? 오히려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현실은 '세상은 공식처럼, 분석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인 듯합니다.


물론, 공식과 프레임이 주는 유익함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공식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프레임은 무질서한 정보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게 해주지요. 과학의 발전, 기술의 혁신, 체계적인 의사결정은 모두 이러한 구조화된 사고의 산물입니다. 공식 없이 현대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종종 이 공식과 프레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공식은 현실을 단순화한 그림일 뿐, 그 모든 복잡성과 뉘앙스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과학적 사고와 데이터 분석이 완벽한 예측과 통제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맹신이 아닐까요?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찰스 다윈의 이야기는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저에게 예상치 못한 재미와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1838년, 29세의 찰스 다윈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 앞에 섰습니다 -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놀랍게도 진화론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펼친 이 위대한 과학자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와 똑같이 망설였습니다. 다윈은 과학자답게 종이 한 장을 꺼내 두 개의 칼럼을 그었습니다. "결혼(Marry)"과 "결혼하지 않음(Not Marry)".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지요.


A 결혼하면:

평생의 동반자, 대화의 즐거움, 아이들의 웃음(+). 하지만 자유의 상실, 여행 제약, 연구 시간 감소(-)

B 결혼하지 않으면: 연구에 전념, 자유로운 탐험, 시간 활용의 자율성(+). 그러나 외로움, 노년의 고독, 가정의 위안 부재(-)

다윈은 심지어 "여행할 자유를 잃는 것은 참기 어려운 악이다"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곧 "아내가 있다면,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지요.


이렇게 꼼꼼히 점수를 매기고 계산했지만, 결국 다윈은 어떻게 이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삶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연구의 자유라는 가치와 가정의 따뜻함이라는 가치는 마치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처럼, 같은 척도로 측정할 수 없었지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 앞에서 그의 과학적 방법론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는 모든 요소를 분석한 후 종이 가장자리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혼하라(Marry)". 그러나 흥미롭게도, 다윈은 이 합리적 분석 끝에 "의심할 바 없다(never mind)"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는 마치 "이 모든 계산은 그저 의식적 합리화일 뿐,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는 사촌 엠마 웨지우드에게 청혼했고, 그들의 결혼은 다윈이 평생의 연구를 진행하는 데 중요한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데이터를 분석하기보다 직관을 신뢰했습니다. 2007년, 모든 시장 조사와 소비자 데이터는 물리적 키보드가 있는 스마트폰을 지지했습니다. 블랙베리와 노키아의 성공이 이를 증명했지요. 포커스 그룹에서 소비자들은 "터치스크린만 있는 폰?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라고 잡스는 반박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는."

애플의 임원들과 엔지니어들은 데이터와 기술적 한계를 근거로 우려를 표했습니다. 배터리 수명, 화면 내구성, 소프트웨어 안정성… 수많은 변수가 실패를 예고했지요. 하지만 잡스는 모든 데이터보다 자신의 직관을 신뢰했습니다.


아이폰 발표 당일, 그는 무대에 올라 "오늘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 성공은 어떤 계산된 공식으로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데이터와 분석의 틈새에서 피어난 직관의 승리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을 돌아봅니다. 첫눈에 반한 순간, 갑작스러운 직업 전환, 예상치 못한 여행...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엑셀 시트로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논리를 통해 가능성을 좁혀가지만,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는 언제나 직관이 개입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틈'입니다.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 논리와 직관 사이, 통제와 수용 사이에 존재하는 그 틈. 우리는 이 틈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우리는 이 틈에서 성장합니다.


다윈은 치밀한 분석 끝에 "이 모든 계산은 그저 의식적 합리화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잡스는 모든 시장 데이터를 거슬러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공식의 한계점에서 직관을 신뢰했고, 그 선택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논리의 끝에서 직관을 직관을 발휘해 보는 것. 통제가 아니라 흐름에 몸을 맡기는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그 '틈'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요? 세상은 공식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분석과 계산의 틈에서 직관이 더 나은 답을 찾아냅니다. 그 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결정은 어땠나요? 논리였나요, 직관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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