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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Dec 02. 2018

양파의 눈물

우리가 몰랐던 양파 이야기

이 글은 칸투칸 '먹고 합시다' 에 기고하였던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전세계 모든 요리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식재료가 있다. 바로 양파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가장 기본적인 한식에도 양파는 필수고, 이탈리아 요리에서도 양파는 빠질 수 없다. 중식은 그야말로 양파의 천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파에 대해 너무 모른다. 특유의 톡쏘는 성분이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양파는 매운맛을 위한 식재료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양파는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가 아니라 '단맛'을 내는 식재료다. 자연과 흙이 선물한 가장 천연의 단맛이 바로 양파인 것이다. 정제된 설탕이나 인공적으로 단맛을 추출해낸 꿀과 시럽과는 달리 가장 고유한 단맛을 가진 아주 기특한 식물이다. 


    양파의 원산지는 서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으로 알려져 있다. 즉 중동과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중심의 식재료였다. 양파의 재배 여사는 최소 4,000년. 예수탄생 이전부터 인류는 양파를 먹어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파'와 비슷한 종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페트병을 잘라 양파를 키워본 경험이 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양파에 싹이 트는데 그 생김새가 흡사 '대파'와 비슷했던 걸 반추해보자. 하지만 대파와는 달리 양파의 잎에는 독성이 있어 다량 섭취시 배앓이를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둔 가정이나 위장이 예민한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양파를 손질할 때 양파 가장 안쪽의 발아지점을 제거한 후 요리하는 것이 도움된다


    90% 가량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에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칼슘, 인,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가장 독특한 성분이 바로 황 성분인데, 이 성분이 바로 양파 입냄새의 주범이 된다. 또한 양파를 유독 많이 먹은 날엔 독한 방귀가스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황 성분 덕분이다. 그래서 입냄새를 중화시키고, 집안에 MOPP 4단계(화생방 경보 최고 단계)를 방지하기 위해서 유용한 방법이 있다. 바로 황 성분이 기름으로 중화할 수 있는 화학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올리브유나 참기름 같은 압착유로 입안을 가글하게 되면, 입냄새 제거에 매우 효과적이다. 기름이 다소 역하게 느껴진다면 우유나 치즈를 오래 물고 있어보자.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양파는 맵고 알사한 맛을 내기 위한 식재료가 아니다. 양파는 성숙하면 할수록 포도당의 양이 증가해 단맛이 강해진다. 그래서 오죽하면 코를 막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게 되면, 그 단맛만으로 사과와 구별이 힘들 정도다. 또한 양파는 익히면 익힐수록 단맛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이는 매운맛 성분인 프로필 알릴 다이설파이드, 알릴 설파이드가 열이 가해질수록 대부분 기화하고 나머지는 분해되어 설탕의 단맛을 내는 프로필메르캅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양이 적기 때문에 설탕만큼의 강력한 단맛을 내진 않지만,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기엔 충분하다. 그런 까닭에 양파의 단맛은 음식의 맛을 덮어버리는 강력한 것이 아니라, 음식에 조화롭게 섞이는 단맛을 내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양파를 너무 많이 쓰게 되면 당연히 음식의 맛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초보 주부들이나 오랜만에 팔을 걷어부친 요리에 서툰 아빠들이 주로하는 실수가 있다. 양파를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넣는다는 것이다.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양파는 때론 절제할 필요가 있다. 양파의 단맛이 과하게 넘치게 되면 찌개의 뒷맛이 '들쩍지근'하게 되어, 다른 섬세한 맛들을 모두 집어 삼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단맛'에도 종류가 있는데 양파의 단맛은 '들쩍지근'이라는 표현처럼 단맛이 닫혀 있다. 단맛이 천연재료치고는 압축적이며 뒷맛이 혀뿌리에 맴돈다. 그래서 개운한 단맛을 내고 싶을 때는 양파를 적게 쓰고 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무는 '열리고 풀어진 단맛' 이기 때문이다. 소고기뭇국에 무 대신 양파를 쓴다고 상상해보자.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양파는 화력이 닿게 되면 휘발성 강한 매운맛은 날아가고 단맛만 남는다. 그래서 조금 더 심도 깊은 탕이나 찌개를 끓이고 싶다면 양파를 먼저 한번 볶아주는 것이 좋다. 단맛의 질감이 달라진다. 중식에서는 쎈 불에 화력을 입혀 캐러멜라이징을 하기 때문에 더 깊은 단맛을 낸다. 집에서는 중식화구를 설치할 수 없으니 오랜 시간 익혀주도록 하자.


    양파는 전세계 어느 요리할 것 없이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다. 어린 시절 신비한 식물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귀하고 감수성 넘치는 식재료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양파에 대해 무지했다. 오늘은 양파에게 눈길 한번쯤 주자. 그리고 양파가 내는 그 식감, 풍미와 함께 양파의 눈물을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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