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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브 Mar 28. 2021

뉴노멀과 마주한 공연장

우당탕탕 공연 제작기

지난해, 유독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이 붙은 공연이었다. 설레면서도 저릿하게 스며드는 긴장의 끈을 좀처럼 놓을 수 없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래 게임을 주제로 한 '최초'의 기획공연이었고, 객석 내 모바일 사용을 전면 개방한 '최초'의 사례, 그리고 라이엇게임즈가 국내 '최초'로 '리그 오브 레전드(LoL)' IP(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선보이는 콘서트였다.

하지만 차곡차곡 잘 쌓은 프로덕션은 뜻하지 않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한차례 취소됐다. 다시 잡은 올해 공연 일정을 마주했을 때는, 분명 설레는 건 맞는데 어딘가 지나간 옛사랑이 떠오르는 것만 같은 오묘한 감정마저 들었다. 이제 막이 오르기까지 채 한 달이 남지 않은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의 이야기다.

여타 필름콘서트처럼 갖춰진 프로덕션으로 준비하는 공연이 아니었던 터라 세트리스트(setlist) 구성부터 고민이 많았다. 베이징과 LA에서 공연한 영상과 게임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LP, 매달 새롭게 발표하는 수백 곡으  음원을 늘어놓고 요리조리 퍼즐을 맞춰보았다. 당장 완벽히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초대형 세계관이었다. 이 곡 다음에 저 곡이 나오는 게 게임 속 세계관의 흐름상 괜찮은 건지 라이엇게임즈사(社)와 수없이 확인해가며 한 곡 한 곡 쌓았다.

그런데 아뿔싸, 악보가 없단다. 라이엇게임즈 측에 수소문해 오케스트라 악보를 있는 대로 구했지만, 공연의 상징성을 담당할 테마의 악보는 오리무중이었다. 우선 작곡가를 섭외하여 채보를 시작했지만, 또 채보만 한다고 다가 아니었다. 연주해야 할 곡에는 온갖 효과음이 가득했다. 특히 타악기의 경우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한 악기들이 포진했는데 KBS교향악단이 치열하게 고민해 준 덕분에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게 됐다. 그렇게 준비된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의 1부는 클래식 사운드, 2부는 록 사운드가 중심에 섰다. 보컬 역시 성악과 록을 넘나들며, 'LoL 세계관, 음악으로 100분 만에 요약하기'에 가까운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최우선한 키워드는 '뉴노멀(new normal)'이다. 게임을 클래식 음악의 영역으로 가져오기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게임의 영역으로 확장해, 공연장이라는 하드웨어에 벽을 느끼는 잠재적 관객층을 끌어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기획 어법과 다른 여러 가지 시도를 아낌없이 할 수 있었다. 여성 관객이 주를 이루는 공연예술계에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전체 예매자 절반 이상이 남성으로 채워지는 것부터가 뉴노멀이었다. 객석 간 거리두기 때문에 공연장에 올 수 없는 관객을 위해,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방향을 고심했다. 모바일의 작은 화면으로 경험하기엔 극적인 순간까지 공유가 되지 않는 것이 내심 아쉬웠고, 그렇다면 영화관에 동시 개봉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로 메가박스 문을 두드렸다. 공연 때 모바일 사용을 전면 개방한 것도 이와 결을 함께 한다. 게임 속 챔피언과 혼연일체되어 정성껏 코스튬을 준비한 관객이 공연에 온전히 스며들길 바라며,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인터랙션을 세종문화회관 무대기술팀과 고민했다. 그 결과 무대는 관객에게 실시간 미디어아트를 그려내고 관객은 무대로 실시간 리액션을 보내는, 프로시니엄을 사이에 두고 무대와 관객이 쌍방향 소통하는 그림을 만들게 됐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속도감 있는 변화 속에서 공연장은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할지, 어쩌면 공연장이 그 변화의 중심을 잡고 문화콘텐츠의 뉴노멀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번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오랜만에 방문하는 관객은 뉴노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객석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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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영은 국립극장과 SM엔터테인먼트를 거치며 넓은 스펙트럼의 문화 콘텐츠를 기획했다.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기획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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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

4월 2일(금) 19:00, 4월 3일(토) 17:00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진솔/KBS교향악단(협연 서울시청소년국악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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