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순 할머니, 68세, 다실바 의상실
작업하고 계셨나 봐요. 항상 인터뷰 요청드릴 때마다 손님들이 많이 계셔서 못했는데, 드디어 인터뷰하게 돼서 기뻐요.(웃음)
엄마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식사도 나누고 같이 지내고 그래요.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촬영되는 거야? 옷이라도 좀 예쁘게 입고 올걸. (웃음)
충분히 예쁘세요.
아유~ 가게라도 좀 치워놓고 있을걸. 바쁘다 보니까 신경을 못 쓰네.
뚱뚱하게 나올 것 같은데?
아니 정말 진짜로 예쁘시고 멋있으세요.
(촬영되고 있는 카메라 화면을 보여드린다)
성함이랑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68 세구요. 장경순.
지금 보니까 밀린 작업이 많으신가 봐요.
내일, 모레 주말이잖아. 이따 딸내미 온다고 해서 밤에 나가야 되니까 밤에 할 일을 지금 하는 거야. 이런 패턴 작업해가지고 옷을 만드는 거지.
혼자 하시는 거예요?
우리 집 아저씨는 일 안 하고, 나 말고 기술자분들 둘. 직원분들 있지.
맞춤옷 만들고 계신 거예요?
그렇죠. 여기는 다 맞춤이니까. 원단은 손님이 고르고.
어떤 옷을 만들고 계신 거예요?
원피스. 할머니들 원피스. 바지.
세트로 맞추신 거예요?
세트로 했어. 이런 양반들은 그래도 젊었을 때, 고생 많이 해가지고 연금이라도 조금씩 타니까 옷 해 입고 그러는 분들이 계시지. 요즘 워낙 경제가 어려우니까. 많지는 않은데.
의상실은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옛날에 뭐 할 거 있어? 이런 거라도 해야지?
우연히 배우시게 된 거예요?
학원 가서 재미를 느꼈죠.
그래도 이 일이 잘 맞으셨나 봐요. 재밌고.
그냥 하다 보니까. 이제는 정말로. 할게 이 것밖에 없어. 안 그러면 놀아야지. 나는 사실 다른걸 어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요. 학원 나가서 디자인 배우고 개인 지도 받고 하면서 21살에 내가 의상실을 세웠으니까. 얼마나 이렇게 배우기가 힘들었는데, 지금 일 안 하고 노는 애들은 좀 안 됐다고. 요즘 경기가 안되잖아요. 경기가 안 좋고 가게라도 차려놔도 되지도 않고 힘만 들고 나이 먹고 늙어가니까. 나야 그냥 여기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하니까 되는 거지만, 다른 사람은 힘들게 배워서 노는 사람도 많죠. 안타깝지. 내가 여기서 끝까지 남은 거야. 몇십 년이야. 북수동만 해도 43년 됐지.
의상실 구조가 재밌어요. 소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여기는 놀이터예요. 할머니들 앉아서 얘기도 하고, 십 원짜리 고스톱도 치면서 놀기도 하고요. 이건 내가 사놓은 원단들. 여기는 오 주문받고. 여기 깨끗하게 청소라도 해놓을걸. 여긴 작업장. 의상실을 할머니들 놀이터로 하고, 우리는 여기서 사랑방처럼 놀이터 만들면서 앉아서 얘기하면서 할머니들 모여서 십 원짜리 고스톱도 치는 거야. 맛있게 밥도 해 먹고 김치도 담가먹고. 많이 해먹을 땐 20명, 30명도 먹고 하거든? 농사지은 거 가져와서 쪄가지고 먹거든. 다 봉사한다 생각하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재밌게 하는 거지. 하면 얼마나 하겠냐. 일이 없으면 못하는데, 그럭저럭 놀지 말라고 일이 있잖아.
의상실 입구에도 꾸며 놓으셨던데.
우리 집 아저씨가 한 거야. 사실은 뭐 같은 거 사다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보기에 좋은 거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거지.
입구에 전시된 것도 다 만드신 옷들이에요?
그렇죠. 다 만든 거죠. 정년퇴임 없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천은 다 어디에서 사 오세요?
동대문시장에서 사 오는 경우도 있고, 지금은 글로벌 시대니까 수입이 많이 들어오지. 이태리 아니면, 독일, 일본 이런데서 많이 들어와요.
무늬는 어떻게 고르죠?
아 여기 샘플 있죠. 샘플들이 다 있어서. 고르면 몇 번 어느 집 꺼로 가져와달라고 하면 다 갖다 주지요.
동대문에 자주 가시겠네요?
물건 떼어다 주는 사람 있어서 받지.
한 번씩 끊을 때 몇 마씩 끊으세요?
바지는 두마. 블라우스는 두마에서 두 마 반. 옷에 따라서 다 다르죠. 맞게 끊는 거지. 원피스는 세 마 반. 투피스는 세 마 반. 네마. 다섯 마. 옷에 따라 다르지.
요즘 유행하는 패턴이 따로 있나요?
돌고 돌아요. 내가 50년 동안 했기 때문에.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 할머니들도 물론 유행에 민감하긴 하지만.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맞춰 입지. 요즘 유행은 바지는 타이트하고 위에는 약간 길게 하고 박스형. 안 그러면 원피스.
의상실에 멋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 많이 찾아오시겠어요.
그렇지. 지나가다가도 들려보고. 연세 드신 분들.
의상실에는 할머니 친구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여기 놀러 오시는 분들이 다 친구지. 여기는 80. 제일 고령이 88세. 74, 78, 80, 81, 83세. 내가 68인데 69 이거든. 제일 어린 분이 65야.
그럼 언제 다들 모이세요?
어떨 땐 점심식사까지 하는 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오후에 들 많이 보이지. 여기 그래도 와서 멋쟁이로 옷 해 입으시면서 스포츠센터 가서 에어로빅 운동하고 집에 가면 지루하고 심심하잖아. 여기 와서 재밌고 그러니까 김치도 해주고 그러시는 분들. 그분들이 옷도 많이 맞춰가시고 연세가 있으니까 많이 안 하셔도 가끔 해 입으시고 그냥 놀러 오고 여기 오면 사람들 만나면서 사람 사는 것 같다고 그래. 여기는 김치 한 가지만 놔도 맛있냐고. 김치 하나라도 맛있고 된장찌개 하나라도 맛있고 콩나물 하나라도 맛있다고. 집에서는 혼자 식사 못하시는 분들도 많거든. 혼자 사시는 분들 많잖아요. 집에서 혼자 밥 먹으면 밥 먹기 싫으니까 내가 의상실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는데 하면서 오시는 거야. 그래서 오이지 있잖아. 오이지 담는 거. 내가 그걸 올해 800개를 담았어. 100개 담고 나눠먹고. 200개 담고 나눠먹고. 오이지는 사는 건 돈이 들어가지만, 손쉬우면서도 다들 연세든 분들은 다 좋아하지. 김치라도 오이지라도 된장찌개라도 콩나물무침 이렇게라도 차려먹는걸 노인 양반들이 좋아하셔. 혼자 드시면 외롭고 밥맛도 없는데, 같이 드시니까. 노인 양반들 놀이터 해서 누가 도와준다면 음악도 하고 장구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렇게 할라니까 이 의상실을 손 놔야 되잖아. 여기서 내가 돈 벌고 베풀면서 노인 양반들이랑 놀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겨울엔 연탄난로 뜨겁게 떼주고, 여름엔 에어컨 틀어드리고. 거기 가면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하고 오시는 거야.
친한 친구분들이 많으시네요.
차영자 언니. 나한테는 언니야. 연세가 드셨어. 김희봉 씨가 81센데, 오시기만 하면 밥해줄라고 하고, 그 언니들이 많이 도와주니까 하지, 나 혼자는 못하는 거예요. 도와주니까, 같이하니까 하니 혼자서는 못하는 거예요. 좋은 분들 많지. 여기 오시는 분들은 남이 아니고 가족이에요. 같이 늙어가시는 거잖아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전화번호 책 뒤져보면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더 살고 싶어서 막 그러더라도 명은 어쩔 수 없잖아요. 이분도 가셨고, 이분도 가셨고, 이분도 가셨구나. 안타깝지.
그렇다면 할머니가 생각하시는 늙어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어떤가요?
내가 이걸 얼마나 더 할런 진 모르지.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는 데까진 더 하려고. 그저께 물건도 많이 사놨는데. 주변에 한 분, 한 분 가시는 거 보거나 아프다고 계속 병원 다니시는 분들 보면 안타깝지. 앞으로 5년은 더 하려고 하는데, 충분히 될는지 모르겠어. 60이 뭐여 내년이면 벌써 70인데. 그래도 여기 오시는 분 보시면 80세 넘은 분들이 건강하게 다니시니까 죽음이 먼 얘기 같이 느껴지는 거야. 오늘 잘 자면 됐다 하는 생각이지 뭐.
가지고 계신 바람이나 소망도 있으세요?
글쎄요. 아직은 많이 놀러 다니지 못했으니까. 이거 그만두면 놀러 가고 싶은데. 그러면 뭐 세월이 멈추나?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나 오늘 손해 봤어. 밑졌어. (웃음) 아니야 농담이야. 누구 오면 거부감 느끼고 피하려고 그랬는데, 인상이 좋은 아가씨가 와서 하니까 재밌게 얘기 잘해주네. 앞으로도 발전하세요.
웃음꽃이 만발했던 다실바 의상실 디자이너 이모. 이 의상실은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60대부터 80대의 할머니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신다. 서로 배려하고, 베풀면서 노년의 삶을 함께 하는 곳이다. 나의 노년은 어떨지 상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인터뷰였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