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자, 76세, 왕칼국수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에유. 콩으로 먹었어.
오늘도 손님들 많이 왔다 가셨어요?
점심땐 정신없어. 네 명이서 해두 너무 바쁘니까. 국수 끓여드릴게. 잡숴.
많이 먹고 와서 괜찮아요. 드디어 할머니 인터뷰를 하게 되었네요.(웃음)
(인터뷰하기 전에) 허리가 안 좋아서 허리 복대를 해야 돼. 우리 집에 사진들 많이 찍어가고 그러는데. 나 앞치마 다 떨어졌어. 새 거는 더워요. 새 거 입으면 더워서. 낡은 게 시원해. 이거 입고해야지. 옷이나 갈아입고 깨끗하게 카메라 찍어야 되는데, 반죽하고 벗는다는 게 그냥 여태 입고 있네.
요즘엔 어떤 국수가 많이 팔려요?
요샌 더우니까 콩국수들 잡수고 가고.
칼국수만 먹어봤는데, 다시 와서 콩국수를 먹어봐야겠네요.(웃음) 할머니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권경자. 연세? 칠십육 세. 칠십 여섯.
국숫집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수원에서 제일 오래됐어요. 스물아홉에 시작해서 칠십 여섯 됐으니까 47년 됐어요. 우리 큰 딸이 5월 4일 날 낳고, 10월 말일에 시작했어. 그러니까 47년 됐어.
이 자리에서 오래 하신 거예요?
네. 여기 들어오는데 나무 심은데 있죠? 지금 거기는 헐려서. 거기서 5년 하고 여기서 42년.
일은 얼마나 하세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콩 삶고 반죽해놓고, 오후 두 시까지 식당하고 나면 안 해.
손님들이 많이 찾는 국숫집이라고 들었어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세요?
비법이라고 할 건 없어요. 이건 그냥 노동이니까. 뭐 먹고 하는 일이 그건데, 직업이 그건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직업이니까. 비법이라고 하면 있겠지 뭐. 첫째는 재료가 맛있어야죠. 콩. 작년 여름엔 15 가마 팔았는데 올해는 12 가마 샀어요. 모자라게 생겼어요. 여름휴가 때,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포장이 많아요. 포장.
포장도 해주시는구나.
2인분 가져가시면 국물을 1인분 더 드리니까 3인분 되잖아요. 김치를 안 드리고. 김치도 맛있어요. 잡숴보셨어? 이전에 맛있게 먹고 갔는데 할머니가 바빠 보이셔서 인터뷰를 못했거든요.
손님들 많이 오셔서 좋으시겠어요.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니까. 일을 해도 기분이 좋죠. 47년 됐으니까. 3대가 오시는 거야. 잘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셔요. 수원에 있다가 딴 데로 이사 가셨는데, 수원에 볼일 있어서 오시면 들리셔요.
왕칼국수집이 오래도록 대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아깝죠. 장사가 안되면 모르는데, 꾸준히 장사가 잘 되니까. 지금 아들이 회사 생활하니까 그동안 붙잡고 있는 거지. 그냥 이렇게 슬슬 해도 일 년이면 몇 천씩 벌어서 쓰고 싶은데 쓰잖아. 아깝잖아요. 아들이 회사 다니다 퇴직하면 할 거야.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 손글씨도 할머니가 쓰신 거예요?
제가 팔 남매 둘째 딸이에요. 옛날에 동생들 업어 주느라고 학교를 못 다녔어요. 국민학교 1학년 다녔나?
그래서 한글만 뗐지. 구구단 하고 한글만. 가격만 내가 쓴 거고.
손글씨 쓰신 거 보니까 정감 가요.
어떤 손님들은 쳐다봐. 글씨를 이상하게 쓴다고. (웃음)
요즘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힘들게 일 안 해.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 하고, 평일 날은 점심시간만 하고 쉬어요. 오후 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아무것도 안 해요. 그래서 장사하는 것 같지가 않아요. 4남매 키워야 하니께 1년 열두 달 쉬는 날 없이 명절날만 안 했어요. 지금은 뭐 마냥 쉬지. 몇 년 전에는 저 큰 시장까지 줄을 서서 가지고, 아주 며칠을 혼났다니까 내가.
할머니 칼국수 만드시는 거 직접 보니까 멋져요.
일하는 아줌마들이 젊어서 잘해요. 아줌마들이 다 하는 거야. 반죽하고 콩 삶아주고 그러는 거야.
저도 할머니처럼 나이 들어서까지 제 일을 하고 싶어요.
할 수 있으면 해야죠. 될 때까지? 운동 삼아서라도 해요.
건강은 잘 챙기고 계세요?
허리는 구부러졌어도 아직 밥은 잘 먹어요. 그러니까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 일 년에 12 가마, 작년에는 15 가마. 밀가루 반죽도 아직 혼자 다 해요. 콩 삶아서 해놓고. 어제 아침엔 3포대. 일요일에는 장사 않잖아요. 일요일에 장사 안 한 지가 24년 됐어요. 왜냐하면 애들하고 같이 쉬느라고. 장사하는데 애들 맘이 편치 않으니까. 그래도 손님들 다 찾아오셔요. 그래서 토요일 바빠요. 내가 허리 구부러져서 어디 안 다녀요. 여기서 목욕탕도 5분이면 가는데, 택시 불러서 타구 다니고. 거리 다니는데 창피해서 못 다녀요. 일을 너무 해유. 지금도 일요일 장사를 안 하니까 월요일에 준비하는 게 많아요. 어제 아침에도 콩 삶아서 해놓고 밀가루 3포대를 했으니까 준비를 많이 하는 날은 힘이 들더라고. 아줌마들은 3명이라도 9시 반 돼야 오잖아요. 그러니까 와서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내가 다 해놔야지. 지금은 5일에 10포대씩 하는데, 초복서부터 중복 때 최고 더울 땐 매일 하루에 3포대씩 나가잖아요. 다 하는 거야. 지금도 일을 많이 하긴 너무 해.
요즘 삶은 어떠세요?
막내딸이 34, 큰딸이 37. 외손녀가 올해 대학 들어가요. 아들 둘이 52, 53. 4남매. 애들 사 남매 다 커서 시집 장가가고 했으니까 지금은 신경 쓸게 없어요. 그냥 벌어서 나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죠. 고향에 노인정에다가 몇 년 전부터 1년에 100만 원씩 보내고. 고구마도 80각 사서 나눠주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
나이를 먹어간다는 거? 그건 뭐 당연한 거지 무슨 생각들을 하나. 죽을 때 되면 당연히 죽어야지.
할머니, 특별한 바람 같은 거 있으세요?
아유 나이 먹어서 뭘 바래. 나이 먹으면요? 아무것도 바랄 게 없어요. 죽을 때가 돼서. 죽으면 다 소용없잖아. 그래서 돈 같은 것도 저금 안 해요. 당장 쓸 것만. 어디 쓰고 싶은 데만 쓰구. 통장에도 돈 모으고 이런 거 안 해요. 알뜰히 하면 일 년에 몇 백씩 더 하죠. 일 년 벌어 쓰는 게 2,3천 쓰는데 돈을 모으진 않아요.
(자꾸 먹을 것을 주시는 할머니와 밀당이 시작된다)
참외 까잡숴.
괜찮아요. 괜찮아요 할머니.
참외 까잡숴.
아니 아니 아니에요. 저희 이제 가니까 괜찮아요.
단호박 하나씩 더 드릴까? 이거 쪄먹으면 맛있어. 고구마 찌듯 푹쪄서 먹으면 맛있다니까?
아니에요. 점심 먹고 그래 가지고.
아니여. 아니여. 내가 다 주고 싶어서 그래. 차 운전할 때 이거 하나씩 잡숴.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너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국수 먹으러 또 올게요.
왕칼국수집 할머니. 할머니는 칼국수 만들기의 달인이시다. 할머니의 칼국수집은 여름엔 콩국수가 겨울엔 칼국수가 인기다. 할머니는 인터뷰하는 내내 계속해서 먹을거리를 챙겨주려고 하셨다. 어떻게 조리해야 맛있는지 조리법도 따로 알려주셨다. 할머니께 많은 것을 받았는데, 나는 할머니께 무엇을 드려야 할까.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