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자, 69세, 부창 쌀집
먼저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최미자. 69.
이 동네에서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42년. 쌀집은 41년. 여기 터를 잡고 시집와서 1년 뒤에 아기 가지고 시작했지.
예전과 비교해서 요즘 동네는 어떤가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그랬어. 예전에는요. 노인네들, 애들도 많이 지나다녔는데. 지금은 애들이 안 지나다녀. 애들이 없어. 여기가 구옥이라 사람들이 다 떠난 거야. 지금은 노인만 살아. 이 골목이 죽었어요. 옛날에는 여기가 북적북적했었어요. 그리고 요새는 대형마트도 있고 그런데 예전에는 허가해 준 곳에서만 쌀을 팔았기 때문에 그땐 장사가 좀 됐지. 그랬는데 그땐 돈이 없었어.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아. 조그만 방에서 애들 데리고 복작대고 그렇게 살면서, 쌀 세 가마니 놓고 살았어. 돈이 없어서. 사람들한테 보여줘야겠는데 돈이 너무 없고 쌀이 조금밖에 없고 창피하잖아. 고추씨를 두 가마 밑창에 놓고, 그 위에 쌀 세 가마 놓고 시작했어요. 애들이 좀 커가지고 애들이 학교도 다니는데, 애들이 앓고 막 그러더라고. 남의 집 사는 삶이니까 주인집 윗집 애들한테 맞고 오면 신경질 나잖아? 내가 그땐 성질이 와일드했어. 매 맞고 오면 때려주고, 남한테 맞고 나한테 또 맞는 거야. 맞고 왔다고. 그래도 이전에 애들 자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도시락 5개씩 쌀 때 참 좋았던 것 같아. 그래도 옛날에는 사람들이 정이 있었어. 지금은 정이 없어. 사람들이 메말라가지고. 내가 여기 40년을 살면서 참 무서워졌다 그걸 느껴. 옛날에는 정이 있어서 이웃집도 터놓고 다니고 먹을 것도 서로 조금이라도 나눠먹고, 빈대떡 하나라도 나눠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요즘 세상 사는 게 살벌해. 세상 사는 게. 그리고 자식이 커서 성장을 하니까 이제 재미가 없더라고. 대화가 줄어.
장사는 어떠세요?
지금은 장사가 전혀 잘 안 되는 거지. 쌀집이 다 문 닫았잖아. 대형마트가 생기고 나서부터. 장사하는 건 그냥 옛날서부터 한 거라 몸은 아파도 익숙해져서 괜찮아. 이전엔 기운이 좋으니까 한가마씩 끌고 다녔어. 손수레에다가 끌고 다녀도 신바람이 났어. 지금은 배달을 못해. 수족이 조금 이상해 졌으니까 이제는 못하는데. 그전엔 삶의 무게가 있었던 것 같아. 사는 게 재밌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전보다 생활이 좀 나아졌거든? 지금은 생활의 여유가 나아졌는데도 허전한 거 있지. 허전하다. 이런 걸 느껴. 살림살이가 나아졌는데도 사람들이 살벌해지니까 옆집 사람도 무섭고 지나가는 사람도 무서워. 그래도 오래 쌀을 장사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가끔씩 와줘. 지금 주문은 많이 안 해도 주민분들이 오다가다 소량으로도 사가시고, 주문도 하시고. 정식 엄마 보고 싶다고 하고. 말 한마디라도 상냥하게 하고, 친절하게 하면 한 명씩이라도 더 와. 인사 잘하고 친절하고. 지나가는 사람 물 한잔 주고, 요구르트 주고, 커피 한 잔 하고.
쌀집이니까 대량보다도 소량으로 사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한 되씩 사가는 사람도 있어요. 찹쌀 그런 거 한 되씩 두 되씩 사가고. 한말씩. 10kg, 20kg짜리. 현미, 콩 이런 것. 정으로 사는 사람이 있지 정으로. 여기 재래시장이 있잖아. 그러니까 들러서 서로 이야기도 정겹게 나누고. 아파트 세대들은 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일주일 먹을 거 사 오는데, 여긴 아직 작은 동네니까 지금도 한 되씩 사러 오는 사람들 있어요.
할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친절'이네요.
살아보니까 친절해야 되지. 어디서든지. 말 한마디도 친절해야 사람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종교를 갖고 사니까 절을 다니니까 남에게 나쁘게 하면 금방 내가 죄받는 것도 있고, 친절하면 사람이 더 오더라고. 노인이고 젊은 이고 친절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와. 친절하고 상냥하고 인사 잘하고. 그러는 게 한 몫하는 것 같아. 그게 정이고. 사람들 오면 얘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그럼 요즘 할머니 삶은 어떠세요?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 자식은 내 맘대로 되나? 자식이 겉났어 속났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 몰라. 그냥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면 되는 거야. 낙천적으로 살아야지. 힘들다고 쥐어짜고 살면 뭐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사는 거지. 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살면 되는 거지. 그렇지?
저도 할머니에 비하면 아직 한참 덜 살았지만, 삶이 참 마음처럼 되지 않다는 것은 많이 느끼고 있어요.
나는 그전에 없어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살았어. 잘 되겠지 하고. 하지만 어쩔 때는 슬펐지. 병들었을 때가 제일 슬펐어. 간신히 남의 집 셋방 살면서 그래도 자식들 대학까지 가르쳐서 아들 둘에 딸 하난데. 대학 가르쳐서 좀 살만 할 것 같으려니까 내가 딱 쓰러지더라고. 쉰다섯에. 어느 정도 자식들 가르치고 해서 좀 낫겠다 싶었는데, 쓰러지는 거야. 아 그래. 나는 복이 이거밖에 없나 보다. 나는 거기까지인가보다 하고 살았어. 딸이 엄마 그전에는 몰랐는데,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까 얼마나 힘들게 우리를 키웠는지 알겠다고. 엄마 건강하게만 살아달라고 그러더라고. 삶이 두렵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종교를 가지고 사니까. 나는 부처님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살거든? 인과응보라는 것을 믿고, 내가 좋은 일 하고 바르게 살아야지. 남한테 더 친절하게 해야지 하고.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면서 느낀 건데요. 할머님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친절, 바름, 인간에 대한 정과 나눔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럼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인간이 무르익는 거지. 뭐. 그냥 늙어가는 거다 생각해. 나도 젊었을 때가 있잖아. 젊었을 때. 늙는다는 걸 슬프다고 생각하면 안 돼.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무르익어 간다. 익어가면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런 마인드로 생각하면 돼. 다 늙어가고 있잖아요. 무르익어서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야. 인생이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 슬프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슬픈 거지. 가족들, 자식들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잖아. 그런 거 보면서 사는 거지 뭐. 늙는다는 거 슬프지 않아. 뭐가 슬퍼. 나도 까만 머리 있을 때 있고, 청춘도 있고, 백바지 입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뭐가 슬퍼. 세월이 가서 슬프다 생각하면, 더 슬플 거 아니야. 긍정적으로 무르익으면 떨어져서 간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많이 아프지 말고, 너무 아파서 자식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노인병원 가지 않고 사흘만 아프다가 곱게 죽게 해주세요. 죽는 건 아무 때고 죽는 거거든. 젊어서 죽던지 늙어서 죽던지. 한 데 죽는 거야. 내가 얘기했잖아. 죽음은 무르익는 거라고. 무르익으면서 떨어지는 거지. 그걸 슬프게 생각하고, 나는 안 죽어야지 하면 안 되지. 언젠간 가잖아. 떨어지고. 나무고 잎이고. 난 익어간다. 내 청춘이 익어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제 아픈 것도 많이 나았잖아. 그 전에는 다리도 아프고 못 걸었는데 이젠 걸어 다니고 말이야.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뭐 도둑질 안 하고 남들한테 피해 안 입히고 있잖아. 열심히 살면 되지. 나는 정도를 지키면서 잘 무르익어서 떨어지면 된다고 생각해.
앞으로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노인네들을 보면서 내가 몇 년 있다가 내 모습이겠지. 지나가는 노인네들한테 물 한 모금이라도 주고 상냥하게 하고 잡수시라고 하고. 그러는 게 사는 것 같아. 죽는 것에 대해서는 무섭진 않아. 내 소망은 얼마나 더 살 런진 모르겠지만, 염라대왕이 오라면 가야 되니까. 얼마 살진 모르겠지만, 가게가 정리되면 좀 좋은 일하고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해. 그리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이 세상 살면서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다 도움이 필요한 거예요. 큰 도움, 작은 도움 모두 필요해.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이면 오지도 않아. 한 사람이라도 필요하니까 말 한마디라도 하고 하지. 인연이 있으니까. 인연이 없는 사람은 걷어 차이기만 하지 안된다고.
할머니랑 저랑도 인연이네요.
전생에 아마 인연이 닿았으니까 이 할머니한테 와봐라 했을 수도 있어. (웃음)
저기 이제 쌀 들어오네. 여태 이 못생긴 얼굴 찍어주서 고마워.(웃음)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쌀집이 무대, 할머니는 배우. 무대에 선 배우가 표정으로 눈빛으로 손짓으로 홀로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것 같다. 할머니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시고, 정이 많으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자주 차오른다. 이전보다 살기는 좋아졌지만 세상이 차갑고 무섭다고, 따뜻했던 옛 정이 그립다고 여러 번 되뇌듯 말씀하신다. 살기는 팍팍했어도 그때가 좋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메라를 내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었다.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