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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bok Apr 03. 2021

테슬라-토요타 제휴가 그럴듯한 이야기인 이유

28일 일본 자동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테슬라와 도요타가 소형 전기 SUV 플랫폼(차의 기본 뼈대)을 공동 개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제휴 검토는 작년부터 진행됐다. 도요타는 테슬라에 차량 플랫폼을 제공하고, 대신 테슬라는 자사 차량에 탑재된 전자제어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기술을 도요타에 일부 제공하는 것이 제휴의 골자다. 
[출처] 테슬라·도요타, 반값 전기차 만드나… 제휴 임박 (21/03/30, 조선일보)


며칠 전, 한국 신문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테슬라가 일본의 토요타와 소형 전기차를 공동 개발한다는 내용인데요. 테슬라의 미국도, 토요타의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이런 소식이 최초로 단독 보도됐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보도의 골자는, 토요타의 자동차 구동 플랫폼에, 테슬라의 전자 제어 플랫폼(ECU)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를 합쳐 저렴한 가격의 전기차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인데요. 이런 제휴가 실제로 성사된다면, 소프트웨어에 약한 토요타와 하드웨어에 약한 테슬라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전기차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렇게 두 회사가 만들 합작 작품이 작년 여름 배터리데이 행사에서 일론 머스크가 언급했던 2만 5,000달러짜리 "반값 전기차”가 될 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듣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테슬라는 전기차부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충전시설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동차계의 애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체 생태계를 부수고 테슬라만의 소프트웨어를 느닷없이 토요타 자동차에 넣는다는 게, 과연 말이 되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만약 토요타와의 제휴가 실제로 진행된다면, 이는 나름 굉장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일론은 일찍이 트위터에서도 테슬라 소프트웨어 판매를 예고한 바 있습니다.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판매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이유1. 하드웨어 보급 속도의 한계

FANG이란 이름으로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구글 등의 IT업계 거인들은 소프트웨어 제품을 판매합니다. 제품 생산에 대규모 생산 설비나 물리적 원재료가 소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빛에 가까운 속도와 0에 가까운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복제해 전세계 곳곳에 유통할 수 있습니다.

2004년 1백만 명 수준이었던 페이스북 유저 수는, 2020년 세계 인구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사진 출처: STATISTA)

하지만 하드웨어의 성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물리적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선 대규모 설비와 원재료 조달이 필요하기에, 그 확장 속도는 소프트웨어에 비해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자동차는 생산 캐파 확장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공장 하나 세우는 데 족히 2,3년은 걸리고, 미친듯이 빨리 일한다는 테슬라조차 상해 기가팩토리를 완공하는 데 10개월이 걸렸습니다. 실제 테슬라의 판매량도 25만 대(‘18년) -> 37만대(‘19년) -> 50만대(‘20년) 순으로 완만하게 증가하며,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그것만큼 빠른 성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기하급수적(곱하기)으로 성장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달리, 하드웨어 기업들은 산술급수적(더하기)로 성장합니다.


FSD든 Autopilot이든, 아무리 테슬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뛰어나다 한들 하드웨어(자동차)가 없다면 소프트웨어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렇기에 테슬라는 최대한 단기간에 많은 하드웨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캐파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캐파 확장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작년 50만 대를 판매한 테슬라가 앞으로 10년간 미친 듯이 생산량을 늘려서 그 10배인 500만 대, 20배인 1,000만 대를 생산한다 한들, 이는 연간 1억 대에 달하는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5-10% 남짓 수준에 불과합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고객으로 두는 수준의 독점적 시장 지위를 확보하는 게 자동차 업계에선 결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유2. 지역별로 파편화된 자동차 시장

다른 산업과 구분되는 자동차 시장만의 또다른 고유한 특징은, 철저히 로컬화된 시장이라는 겁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전세계 시장에서 30-4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절대 강자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와 비교하면 자동차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처럼 파편화돼 있습니다. 한국엔 현대기아차, 미국엔 GM, 일본엔 토요타, 그리고 독일엔 벤츠/BMW/폭스바겐 등 지역마다 저마다의 로컬 강자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절대 강자 없이 지역별로 다양한 OEM들이 각자 5-10%대 내외의 점유율을 나눠 가지며 병존하고 있는 것이 자동차 시장의 현실입니다.

1위인 토요타의 시장 점유율도 1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자동차 시장은 파편화돼 있습니다 (사진 출처: Statista)


아무리 토요타가 잘 나간다 한들 유럽에서 독일3사만큼의 지위를 확보하기 어렵고, 아무리 GM이 잘나간다 한들 한국에서 현기차만큼의 지위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국가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 맞는 디자인과 성능, 브랜드가 필요할 뿐더러,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국가별 경제적 자부심의 심벌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도 이런 한계에서 마냥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때문에 지금의 토요타, 폭스바겐과 유사한 수준인 1,000만 대 내외의 일정 수준의 생산량에 도달하면, 테슬라 역시 성장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어렴풋한 짐작을 해봅니다. 


이유3. 일본 시장의 미미한 매출 잠식

토요타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함으로써 테슬라가 가장 우려할 포인트는 테슬라 자동차의 매출 잠식입니다. 제휴로 만든 토요타 자동차의 판매가 늘면서 테슬라의 판매가 줄어드는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토요타가 기반으로 하는 일본 시장은 상대적으로 이런 걱정에서 자유롭습니다일본은 ‘테슬라 방탄(Tesla-proof)’으로 불릴 정도로 테슬라의 존재감이 미미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테슬라의 일본 시장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테슬라의 브랜드 인지도 자체가 현저히 낮을 뿐더러, 테슬라만의 독특한 온라인 판매 방식이 오프라인에서의 맞춤 상담을 원하는 일본 소비자 정서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또 일본 시장 자체가 “잘라파고스(Jalapagos)”라 불릴 정도로 해외 브랜드에 배타적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죠.

일본에선 닛산 Leaf가 테슬라 모델3보다 잘 팔립니다 (사진 출처: Wikepedia)


이런 이유로 인해, 매년 500만 대 내외의 신차가 판매되는 일본 시장에서 2019년 테슬라의 판매량은 1,300대 내외에 그쳤습니다. 같은 시기 닛산 Leaf가 20,000대 가까이 판매된 걸 감안하면, 테슬라의 일본 시장 성적은 처참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현재 테슬라는 일본 시장에서 아직까지 ‘듣보잡’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테슬라 경영진의 눈에 토요타와의 제휴는 매출 잠식에 대한 리스크라기 보다는, 큰 자본지출 없이 추가 매출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로 보일 겁니다



테슬라가 독자 생태계를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토요타와의 제휴로 인해, 테슬라의 독자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단지 자동차 몇 만대 더 팔려고 공들여 만들고 있는 생태계를 통째로 버리는 선택을 할 위인은 아닐 겁니다. 때문에 일단 일본이나 동남아처럼 기존 테슬라의 존재감이 미미한 시장에서의 판매를 전제로 제휴가 진행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뿐만 아니라, 토요타와의 제휴로 만들어진 제품이 기존 테슬라와 동등한 퀄리티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테슬라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아니기에 테슬라 자동차만큼의 성능을 내는 데 한계가 존재할 것이며, 업데이트도 늦을 지 모릅니다. 또 테슬라가 토요타와의 제휴 제품에는 ‘일부러(?)’ 열등한 성능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같은 테슬라 소프트웨어를 쓰더라도 테슬라 하드웨어에선 레벨 4, 토요타 하드웨어에선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든 테슬라는 자체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게 좋은 일인가요?


토요타와의 제휴는 테슬라엔 호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캐파 확장에 소요되는 시간적, 물리적 한계를 제휴를 통해 보완할 수 있을 뿐더러, 소프트웨어 판매를 통해 추가 매출까지 노려볼 수 있는 옵션일 테니까요.

하지만, 토요타엔 과연 좋은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더 뛰어난 역량을 갖춘 테슬라에 소프트웨어를 외주화함으로써 더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소프트웨어 제조 역량이 부족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외주화를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디자인과 차체가 동일한데, 한 쪽은 토요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다른 한 쪽은 테슬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면, 누가 토요타 소프트웨어를 선택할까요? 일단 테슬라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쓰게 되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될 지도 모릅니다. 토요타 본연의 잠재력을 하드웨어로 한정시키고, 부가가치 높은 소프트웨어 영역은 모두 테슬라에 내주는 겁니다.


아직 테슬라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구체적인 제휴 내용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기에, 이 글은 전적으로 저의 뇌피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테슬라-토요타 제휴가 이뤄진다면, 자동차 업계 경쟁 구도에 한 획을 긋는 재미있는 분기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 글은 전기차 전문 매체 EV POST에 동시 게재됩니다


Reference

[단독] 테슬라·도요타, 반값 전기차 만드나… 제휴 임박 (21/03/30,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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