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맥락을 만든다

<달과 6펜스>를 읽고

by cobok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차이


비단 예술가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찰스 스트릭랜드들이 존재한다. ‘진리에 대한 욕구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세계의 기반마저 산산조각 내는 사람들’이 각계 각층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를 위해 주변인과의 충돌은 물론이고, 개인사가 망가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걔 중 이러한 이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하는 이들의 삶은 신화로 포장돼 추앙되고 사랑받는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았던 건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한 시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열정이 그를 이리저리 몰고 다녔으니까요. 그는 어떤 신성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였고, 그의 몸속에 도사린 악마는 너무나도 무정했지요. 진리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 세계의 기반마저 깡그리 산산조각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트릭랜드가 바로 그런 인간이었지요. 그의 경우에는 다만 아름다움이 진리를 대신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깊은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p310)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티브 잡스다. 항상 폴라티에 청바지를 입고 다녔으며, 독선적 태도로 주변인들에게 원망과 미움을 산 인생사가 스트릭랜드를 연상케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잡스는 사후에 Apple을 대표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남았고, 그 인생의 굴곡은 두 편의 전기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췌장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한 잡스의 말년은 그 자신에 있어 고통스런 비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비극이 있었기에 대중은 그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됐다.


같은 이유로, 빌 게이츠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잡스가 하드웨어의 혁신을 이뤄냈다면,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한 획을 그었음에도 그는 잡스만큼 열렬히 사랑받지는 못하는 듯하다. 물론 전염병 퇴치와 같은 자선 사업에 앞장서고, 나름 화목한 개인사를 가진 그를 존경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속칭 ‘앱등이’들과는 달리, Microsoft 로고만으로도 열광하는 광팬들은 유난히 찾기 힘들다. 무엇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차이를 낳은 것일까?



비극은 맥락을 만든다


결국 어느 분야든, 창작자의 비극적 삶이 대중에게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부여할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더크 스트로브의 아래 말처럼, 대중에겐 작품을 이해할 맥락이 필요하다.

‘존귀한 아름다움은 예술가가 들려주는 하나의 멜로디라오. 그것을 다시 우리 자신이 마음의 소리로 듣기 위해서는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오.’ (p310)

작가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무슨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알아야만, 비로소 제대로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아무런 스토리도 없다면,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잘 만들었는가 혹은 잘 그렸는가하는 완성도 뿐일 것이다. 잘 만든 제품/작품은 사랑받고 잘 팔릴 순 있겠지만, 속칭 시대를 초월한 ‘전설의 레전드’가 되지는 못한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1,000억이란 가격이 매겨진 이유는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어서'가 아닐 것이다. 평생 예술을 쫓다 정신병에 걸린 화가의 고통스런 시선을 담았다는, 나름의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맥락이 꼭 비극적 이야기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비극이 더 잘 팔린다. 스트릭랜드와 같이 이상을 위해 자신의 삶을 파괴한 고통과 슬픔의 이야기에 대중은 더 열광하고 관심 갖는다.


3_1165480082.jpg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1889)

출처: 달과 6펜스 (서머싯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