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그러니까 내가 이십대 중반에 고향집을 떠나 객지를 떠돌다보니 여행하는 것이 호사를 누리는 일로 느껴져서 엄두를 못내고 살았다. 1998년 겨울 혼자서 중국 여행을 갔던 것도 따지고보면 여행이 아니라 탐방의 의미를 갖고 출발해야 했다. 중국 역사든 소수민족 특별히 회족과 관련된 자료를 얻겠다고 했던 건 중국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돌아다니기 위한 구실이었다.
이십여 년 타향을 내집 삼아 살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울산으로 와서야 맘 편하게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 소속했던 곳을 정리하고나니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직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과 가끔씩 막막해지는 양가감정을 품고 낯선 여행자가 되었을 때 그제서야 배우게 된건 '나도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실 위에 자신을 빚어야 한다는 대업을 잠시 서랍 안으로 밀어넣으니,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에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싣고 가까운 곳부터 갈 수 있게 되었다. 훅하고 예고없이 찾아드는 어느 계절에라도 하루의 몇 시간을 흘리고 올 수 있다. 혹시 무작정 떠나야 할 때 생각이 깊어진다면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그 잡다한 생각들은 사실 여행을 떠날 준비라기보다 오지 탐험을 계획하는 원정대가 미간을 찌푸리고 두뇌를 풀가동하며 구상할 작전에 가까운 것이다.
'가볍고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곳이 경주든, 부산이든, 강동에 몽돌해변이든...'
나들이 복장으로 환복하는 동안 거추장스럽게 내 몸을 휘감고 있던 것들의 절반은 벗겨진다. 그렇게 몸이 가벼워지자 마음이 관대해지는데, 때를 기다렸다는듯 내맘이 얼마나 넓으며 깊어질 수 있는지 스스로를 가르치고, '관대하다'는 단어의 점잖고 진중한 보폭이 순식간에 휘발되어 가벼워진 몸에 얹혀진다. 내 안에 다른 것이 들어올 여분의 자리를 비켜주니 인격도 자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랬구나!
'사람이 가벼워지는거. 참, 멋지네!'
그리고
'가볍게 만들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것!'
간혹 언제 방문할지 모를 기회를 속절없이 기다리는 소심한 성격 탓에 생각도 성장도 멈춰세웠다. 그런 시간들이 오롯이 되돌아와 세월을 먹었다 자백한다.
얼마나 내 속을 채워야 아구까지 찼다고 할 수 있는 정도가 되나? 채움이 완전한 채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원천이 사람의 마음에 있어 볼수도 측량할수도 없다.
텅빈 사무실에 남아 망부석처럼 한 자리에 몸을 붙히고 앉아 손과 눈으로만 일하는 사람조차 힐끗힐끗 어둑해진 바깥을 확인한다. 날씨를 살피고 맞은편 건물에 켜진 불빛도 하나! 둘! 카운트한다. 퇴근하며 들러야 할 빵집과 마트에서 구입해야 할 아이템들이 등댓불처럼 켜졌다 꺼졌다 한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이 여행'이라 치고 열심히 사는 것만이 답이라고 인정머리 없게 일갈하지 않도록 하자. 혹시 여행지에서 누군가 내게 '왜 이곳으로 왔죠?'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이 즉흥적으로 나올지 준비해온 대본대로 연극 대사처럼 외울지? 난 아마도 이곳에 오기 며칠 전으로 돌아가 그 때 나눴던 이번 여름 휴가를 상상하며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을거다.
쏟아내고 담아오는 길
정제되지 않은 화를 뿜어내는 감정과 깨어진 파편으로 날아든 애인의 이별 통보. 올리다만 건물 앞에 맥이 빠져 '공사중단' 이란 간판을 걸지말지를 고심하는 미래에 대한 이정표. 결혼인지 독신인지 단판을 내릴듯이 주장하는 수다. 말해 뭘해?라는 듯 곱게 차려입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친구들까지 골목이 가득차 있다. '사람다움'이 매물되어 있는 광산 같은 여행지에 사람이 붐비는 이유가 누군가가 거기에서 '자신의 사람다움'을 찾았다는 소릴 들어서인것 같다.
자세히 들어보면 객들이 쏟아놓은 이야기들은 뭔가 특이한게 아니라 낯설었을 뿐이지 토박이들이 고민하는 일상이기도 했다. 다른 것이라는게 기껏해야 주소와 사는 정도로 별반 다를게 없으니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고, 수두룩한 문제들이 쌓여있다해도 사람들 속에 그 답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객과 본토인들이 소통하지 않았는데도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걸었던 후미진 골목과 찻집과 음식점 반찬들을 소상히 설명한다. 식당에서 차려낸 찬들이 관광지에 적을 두고 사는 이들의 그날 아침 밥상에 올랐던 음식이라면 같은 걸 먹고 마시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주고 받는것과같다.
무엇보다 토박이들은 여행객들에게 쉼터뿐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적당한 울타리를 쳐주고 있었다. 그 옛날 설화 속에 등장했던 우물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틈을 기다려줬다. 그래서 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여행은 내가 원하는 그것을 찾아내게 만든다.
한낮 기온 34, 35도를 오락가락 했던 8월 첫 날 경주를 다녀왔다.가급적 일찍 출발했더라면 덜 피곤했을수 있었다는 뒤늦은 아쉬움이 남았던 여행이었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해서 밤 아홉시에 마친12시간의 여행.
울산 지역의 많은 근로자들이 여름 휴가를 떠난거리는 반쯤 비었고 나른한 햇살이 부채살 실루엣으로 땅 위에 떨어지는 오전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승객들이 우주를 유영하듯 느린 동작으로 전광판 노선표와 시간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30여 분을 달리다보니 무심히 지나쳐도 액자 속 풍경이 되는 경주가 차 속도를 따라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갔다. 초등학교 때 우리 부모님이 추석 명절에 자식들 셋의 손을 이끌고 왔었던 유원지, 다보탑과 석가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여행 담보물로 남겼던 기억이 스친다.
이 정도의 추억이라도 여기에 남겨둔게 얼마나 잘한 선택이었는가를 아버지께 전해드려야겠다.
삼키려고 온 2020년 경주 나들이
먹어서 삼키려고 도서관 열람실에서 '경주. 역사. 여행'이란 키워드만 보고 뽑아온 책들을 책상 위에 쌓아두고 꾸벅꾸벅 졸다가 주마간산으로 눈에 포착된 글 앞에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그 시간이 되어야 책을 읽으면서 사고할 수 있었다.
경주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가끔씩 떠올라서 한 시간 내로 올 수 있는 곳을 돌아돌아 왔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오색 연등이 곶감 매달듯 줄줄이 달리는것도 싫고, 향불 연기를 따라 퍼지는 종교적 향취로 머리가 몽롱해지는 기분도 언짢았다.
그럼 굳이 왜 경주로 나들이를 왔는지?
종교적 이미지의 색채를 쫙 빼고 역사를 보자 하니까 천년의 고도 경주라서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만큼 보인다.' 는 명언처럼,
책에서 수집해온 역사와 고분들, 유물들이 내딛는 발길따라 직소퍼즐처럼 이야기가 꿰어졌다.
걷다가 멈취섰고, 보다가 사진으로 흔적을 남겼다. 집으로 돌아가면 사진에 찍힌 풍경만으로는 풀어내지 못하는 갖가지 감정과 인상들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