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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an 22. 2024

독자의 사생활

식사 대신 글


. 극히 사적인 기준

제목려서, 괜찮은 내용일 거라고 믿게 되는 편집자의 말재간에 홀려, 영상으로 자신들이 구입한 책들을 언박싱하는 작가들과 독서모임 인도자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설득되어서, 새 1월에 구입한 책들 공통된 소재들에는 인간의 몸, 노동, 휴머니즘적 내용들이 대부분이. 

1월의 첫 번째 책으로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면서 독서 생활을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길을 가야겠는데 정해진 목적지가 없이 주마간산으로 눈에 띄는 책을 선정하 걷다가 만난 책이다. 의 글을 읽면서 속삭였다. '죽을 때까지 황현산 선생의 글을 몰랐을 수도 있었겠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그의 책을 만났으니까 다행이다.'

 한 권의 책에서 다음 책으로 옮겨갈 때, 나는 책과 관련해서 작업하는 혹은 노동하는 사람들이 올린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소개 영상, 작가나 편집자들이 기획한  정보들을 들춰본다. 사적 분석을 거치는 과정에서 품에 안기듯 내 가슴으로 확 달려드는 책이 나타나기도 한다. 종종 나의 지극히 사적인 감수성이 발현되찰나들이 비정기적으로 활성화된다. 수시로 올라오는 구매욕은 장바구니에 담아뒀다가 월초가 되면 절제하며 방출한다. 책값과 독서 시간과 기록이 맞물려 있어서 구매에 대한 확신을 얻기까지는 몇 주일이 소요된다. 어떤 책들은 아무리 엎어뜨리고 매치 고를 되풀이해도 최종 구매 목록에 삭제되기도 한다. 현재로선 읽을 자신이 없는 책이거나 관심 밖에 장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독자들의  평가나 별점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결정은 경솔한 것 같다. 독자들의 리뷰를 참고하지만  평가에 의지해서 구입했다가 실망했던 경험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독서는 아무리 객관적이래도 주관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들은 한 권씩 아름아름 구입해서 읽는다. 해에 고전 작품에 올라있는 책들 중에서 프랑수아즈 사장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2023년 12월이 저물어 가던 날 나는 어느 비평가의 말에 마음이 혹해서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보려 했던 날 이 책은 이미 대출 상태였던 터라 당장에 구매했다. 이틀 뒤에 배달된  책을 받아 들고 몇 장을 읽는데 '폴'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헷갈렸다. 폴과 로제의 사랑이 프랑스인들 특유의 일반적인 사랑은 아닐 테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그들의 애정 방식은 내게 익숙해진 문화와는 거리감이 컸다. 납득되지 않는 '나른함과 의지 없음'이 그들의 사랑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서 중재자가 되주고 싶었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의문이 남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고전으로 분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는가. 사랑을 명쾌하게 무어라 정의 내리지 못하는 어정쩡한 인간의 태도에 반감이 들었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람들이 줄기차게 던지는 '사랑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스물넷의 프랑수아즈 사강식 대답이다. 



. 불편한 책과 사생활

<MOTHER CARE> 한국어 어머니를 돌보다11년 동안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를 돌보면서 죽음. 사생활. 돌봄에 대한 작가의 양가감정을 기록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소설이 아닌 자전적 글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구입해 놓고도 책 첫 장을 열기가 두려웠다. 마치 아픈 엄마의 병명과 치료과정을 들으러 진료실 문 앞에서 대기하는 기분이었다. 실제 팔순이 되신 내 엄마의 몸은 세월이 지나가며 남긴 흔로 통증을 앓고 있다. 어깨와 목, 허리와 무릎, 발과 발톱까지 외관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통증의 뿌리가 엄마의 몸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중이다. 그렇게 고통과 치료를 오가다가 어느 날 늙음이 자주 겪는 질병 가운데 하나인해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내게 있다.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생명에서 죽음으로 연결된 한 인간의 크로노 여전히 나의 생활이 얽혀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혈육 간의 크로노스 사슬이라고 해야 하나. 내 몸속 유전자의 근원인 엄마의 현재적 아픔에 대해 항상 관대한 태도로 대하지 못하는 자식으로서 갖는 양가감정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자 성찰적 독서라는 미명 아래 사적 생활이 까발려질 수 있겠다는 상상도 했다.

고맙게도 작가 린 틸먼 자신의 간병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환자의 보호자 처지가 되는 것도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것 같다. 여러 유형의 간병인을 만나는 것 몸과 몸이 부대끼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각각의 인생들이 돌하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그 세계에서 초의 부대낌은 작가 자신과 어머니와의 관계였을 것이고, 타자에게는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겪게 될지 모를 사람에게 돌봄의 현실다.

책 표지에 색연필을 굴리듯 맞잡은 두 손이 상징하는 양가감정에 관해 알고 싶어서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머릿속으로는 이해되지만 체득하지 않은 돌봄에 대해 생각할 게 늘어만 가는데 깊어지지는 았다.

 

간병인에게 필요한 것은 세심한 주의력. 경청하는 태도, 진심 어린 숙고, 솔직함, 성실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겪었을 '시간이 없는 날들'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가슴에 채워지는 인간의 도덕과 같다. 이쯤에서 엄마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배가 오버랩됐다. 후배 실컷 울고 싶을 때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느리게 당신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 5년이 되었다. 후배는 나를 만나 엄마의 상태를 얘기하다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 말을 번복하면서 울었다. 엄마가 자꾸 물었던 말을 묻고 또 물으신다고. 그럴 때면 엄마가 환자라는 사실이고 뭐고 성질을 부린단다. 엄마와의 일상을 말하면서 후배 눈시울 붉어지다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앞이라서 맘 놓고 울 수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후배한테 나는 그저 미안하다.


린 틸먼의 어머니가 십일 년간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소천하셨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후배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고 있다. 후배는 엄마가 맛있어하는 음식 위주로 간편한 치트키들을 매주 주문한다. 자기는 직장 다니느라 요리 만드는데 재주가 없어서 가장 간단한 덮밥으로 상을 차려낸다고 했다. 그렇게 오 년째 엄마와의 동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노동이라는 것은 냉정하여, 어떤 성과나 기술도 대가 없이 내주지 않았다. 매일 작업장, 주방, 목욕탕, 출산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성실이 몸에 새겨진다. 통증이 자세를 만들고, 자세는 체형을 만든다. 반복된 행동은 버릇과 습관으로 남는다. 그렇게 어느덧 뱃심 든든한 몸통, 딴딴한 장딴지, 표정이 다채로운 얼굴, 짧게 다듬어진 손톱, 갈라진 발바닥, 청력 낮은 귀는 자신의 것이 된다. 젊은 시절, 아직 노동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몸을 안고 살아간다. 오래 붙박인 사람의 뒤태를 본 후에야 내가 이들에게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 《베테랑의 몸》 프롤로그 중에서 발췌-



. 일과 삶, 자부심을 보다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 대충 알아도 내가 살아가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건성으로 지나쳤던 직업군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베테랑의 몸표지 사진 상단에는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손질하는 로프공 김영탁의 뒷모습이, 하단에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 하영숙의 딴딴한 옆모습이 올라가 있다.

노동과 몸에 관한 글을 읽는다고 해서 이해도가 높아지진 않지만 나는 이번 독서를 시작으로 노동과 관련된 관심을 늘여가고 싶다. 화려한 색채와 음향과 비주얼로 메이크업 된 세상이라 그것만이 내가 살아갈 단 하나의 세상이라고 오해했던 건 아닌지. 이 책은 단지 368그램의 중량으로만 내 손에 들려지진 않았다. 각각의 작업 현장 화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그래, 그랬겠구나' 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작년 시월부터 나는 일주일에 나흘 다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더니 농담으로 듣던가 놀랍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쓰리잡? 가을걷이 후 논두렁에서 이삭줍기 하는 심정으로 시간을 쪼갰다. 집에서 7분 거리에 있는 김밥집에서 나는 걸려오는 전화주문을 받고, 음식이 나오면 포장을 하고, 가끔 오므라이스와 김치볶음밥을 후딱 만들어낸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정해진 동선에 따라 움직이고, 칼질 하고, 청소로 마감하면서 내 몸이 아홉 평 남짓 공간에 최적화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주방 동선은 두 사람이 짧게 숨을 참고 몸을 홀쭉하게 해야 지나칠 수 있는 직사각형 구조로 오밀조밀 짜져있다. 문턱을 경계로 주방과 홀 포장대를 오가면서 작업을 하는 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리뷰를 달아준 고객에게 배달해야 할 새우튀김을 엉뚱한 집으로 보냈다가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수제돈가스에 반드시 함께 배달해야 하는 돈가스 소스를 빼고 보내면 소스 한 개만 다시 포장해서 배달해야 한다. 작업장 루틴은 암기만으로 몸에 붙지 않고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일이 몸과 일체가 된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하듯 일이 익숙해지는데 이번 달까지 아르바이트를 마무리하게 된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나는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는 일을 하면서 1월을 지우고 있다. 지난주까지 근무하고 있는 복지회 보고서 책자 인쇄와 우편 발송을 끝냈다. 지난 8년 동안 은퇴목회자 교회 주보 작성과 프린트도 그곳 적임자에게 다 넘겼다. 남은 날수는 오늘까지 포함해서 십일이다. 미련도 여한도 없다. 채워질 것을 대비해서 손을  비운다고 하기에는 내가 붙잡고 있던 일과 삶이 넘치는 것들은 아니었다.

추임새를 넣어보자. '그래. 살아진다.'




책 소개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23년 초판 40쇄.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김남주 옮김, 민음사, 2023년 1판66쇄.


린 틸먼, 《어머니를 돌보다》, 방진이 옮김, 돌베개, 2023.


희정 글. 최형락 사진,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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