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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Aug 15. 2024

나는 고모다

단편 06


멈춰 버린 에어컨

시간 앞에 기계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새로운 물건을 보러 나갔다.

수명을 다한 에어컨을 향해 남아 있는 한 마디

'잘 가라'


새것이 오기 전에 집 정리를 해놔야지

이젠 버릴 때가 된 책들과 옷가지를 찾아보자

헌책 세 묶음에 옷 가방이 하나

책들 사이에 삽지처럼 끼어있던

'고모'라고 쓴 편지지를 찾아냈다.



아이는 비밀을 나누고 싶은 한 사람이 필요했던가 보다

색종이로 경고등을 붙인 수제 봉투에

'이 편지는 고모만 볼 수 있다.'며

반말을 써놓았다


편지는 사라지고 봉투만 남은

초등학생 조카의 옛 편지를 발견했다.

구형 에어컨이 떠나면서

새것을 들일 일이 없었다면

조카의 편지봉투를 언제쯤 만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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