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바람도 적잖이 불어대고 인적도 준터라 나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피비상품권이 있는걸 확인하면서 카스테라를 살까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지난 해 엄마 간병하는 동안 발길로 낙인 찍어둔 이곳 병원 앞을 휘감고 지나가는 개천. 그 개천을 따라 걷자니 바람결에 무너진 눈발이 뒤엉켜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조금 더 세차게 내리면 어떨까...' 대설에 대한 내 희망은 기운이 없었다. 쎄게 내리든지 내릴것 같다가 그치든지 무슨 상관인가. 그런 생각을 해서였나 개천 다리를 건너는 동안 바람은 나랑 같은 보폭으로 따라왔고 눈은 오던 길을 돌아갔다.
'어느 찰나에 했던 생각을 내 손으로 각색하기 전에 기록하는 게 자기성찰에 도움된다던데'
내가 계속 걷는 동안에 생각도 저 할 일을 하는 게 느껴졌다. 생각은 생각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눈치챘다. 생각이 생각하길 포기하고 싶어한다는걸. 그래서 그 기운없는 생각하기의 처량함 때문에 눈에 초점이 분말처럼 가벼워져갔다.
노멀한 나였다면 나무의 이름을 확인했을지도. 학명 이름표를 눈으로 스윽 훑었을지도. 그런 행위를 안 해도 됐다. 나무의 정체를 확인하는 공정에서 두어 가지를 빼니 간단하게 나무가 보였다. 눈이 내린 뒤라서 나무 자체로 훌륭했다.
울산에서 눈을 마지막으로 봤던 게 제작년이었나. 진눈개비였고 참된 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그걸 눈에 띄는 먼지로 치부하며 눈살을 찌푸렸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