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가 다르기를 바라며
하루에 길을 내는 작업의 첫 단추로 작물재배 앱 회원탈퇴를 눌렀다. 포인트와 연결망들이 다 사라진다는 문구에도 굴하지 않을수 있음에 감사했다. 늦은 밤까지 작물에 물주기를 안 해도 되었고 잠을 잘 시간이 빨라졌다. 가득찬 쓰레기통이 비워진 깔끔함이 허전함과 등치되던 무중력 같은 찰라가 지나가니 족쇄가 풀린 손목부터 어깨와 목부위 가슴 속까지 청량한 기운이 운행하는 것 같다.
1층 화단에 산수유 가지를 뚫고 나오는 노오란 봄눈들이 전구에 불 밝히듯 몽글몽글 고갤 내밀고 있다. 어제도 그저께도 제자리에서 봄을 틔우고 있었을 나무에 닿던 내 시선에는 영혼이 없었기에 나무 한 그루가 살아내는 생명력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이곳에는 이틀 전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릴듯 묵직한 하늘 아래 빗물이 고였다. 하얀 승용차, 노란 어린이집 차량, 잿빛과 짙은 청색깔을 입은 차들이 주차 라인에 줄맞춰 서 있기도 하고 들어오든지 빠져나가고 있다. 그래도 빗줄기는 가늘어지지 않고 연이어 내리고 있다.
땅이 젖듯 산수유나무도 찬 비를 맞는 중이다. 가지도 찐해지고 노오란 전구 같은 새순들도 밝게 빛나고 있다. 나도 오랜만에 감상에 빠져 세상이 달라 보이는 색다른 렌즈로 여기저기 훑는 중이다. 숫자상 기온이 섭씨 5도. 지난 주보다 떨어진 기온인데도 사람들 옷차림은 사뭇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사흘 전에 훅하고 날라왔던 온기를 맞았을 때 사람들은 봄이 다시 왔다는걸 알았고 한 두달에 짦은 시간을 봄과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 같다. 한껏 부피를 부풀려 추위와 맞섰던 옷들이 세탁소와 옷장 안으로 줄지워 들어가지 않았을까.
2월의 끝을 이틀 남겨둔 날 조카가 울산으로 내려왔다 나흘을 함께 보내고 떠났다. 고모를 보려고 먼길 달려올 수 있는 조카가 있음에 기쁘고 행복하다. 허전함과 아쉬움이 조카의 난 자릴 대신하지만 당분간 이 집에 감돌 훈기로 넉넉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카의 안녕과 매일의 걸음에 하나님의 보호와 동행하심이 있기를 두손 모아본다.
이번 주말부터 다시 북까페 모임을 시작하게 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읽게 될거다. 독서모임 기간이 정해지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정지되어 있던 머리에 기름칠을 한듯 '고백록'과 '어거스틴'과 '고대 중세 역사'에 관한 문장들과 삽화들이 주르르 주르르 방울방울 빛을 내거나 가지를 뻗으며 이어지고 제자릴 찾아가고 있다. 나눔과 찾아올 변화, 사람들의 말로 대변될 그들의 마음들이 이끌어갈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싶다.
하늘이 어둡다. 잔뜩 비에 젖은 담요가 높은 창공에 매달려 있다. 잿빛 아파트와 잿빛 하늘과 젖어서 까매진 아스팔트. 봄 마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