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뻬드로 솔로마, 과테말라 - Soloma, Guatemala
20140913-20140915 예전에는 호수였다던 솔로마, 그래서인지 깊은 산 속 호숫가 마을처럼 습하고 춥다.
또도스 싼또스에서 우리 부부를 큰 사랑으로 영접해준 또마스 아저씨에 가족에게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가 받은 마음을 표현할 길이 도무지 찾아보아도 없다. 손으로 집에서 직접 만든 위삘과 입어오셨던 전통의상과 모자,
그리고 우리 부부가 추울까 밤이 늦도록 방에 장작을 피워주셨던 이모님의 마음을 어떻게 값으로 환산하여 드릴 수 있으랴.
하루 종일 고민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한국 전통 지갑에 약 3개월치(학비라고 해봤자 한 이삼일 치 두 명 방세 정도밖에 안된다)의 헤이디 학비를 넣어주기로 의견을 모아 조심스레 건넸다. 돈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며 완강히 거부하는 가족들에게 지금은 마음을 표현할 길이 달리 이것밖에 없음을 열심히 설명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때를 위해 미리 예약금을 내는 것이라 능청을 떨었다. 진심으로 또도스 산또스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꼭 오고 싶은 곳이다. 인상 깊은 건물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길을 거닐며 마주쳤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순수하고 따뜻한 눈빛과 마음들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또도스 싼또스에서 쏠로마로 가기 위해 다시 뜨레쓰 까미노 3 camino로 가는 미크로부스에 몸을 실었다. 내 덩치에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 부부 옆에 앉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이 탈 수 없겠지 하며 오늘은 3인석으로 편하게 가겠구나 싶었는데 인디헤나 전통 의상의 할아버지 한분이 들어와 엉덩이부터 쑥 들이 미시더니 결국은 내 허벅지 위에 앉으셨고 우린 이 상태로 50분 정도 오르막길을 올랐다.
지난밤, 나는 싼 뻬드로 솔로마로 가는 길을 구글 어스에서 확인하고 거의 실신 상태로 밤을 지새웠다. 위성사진에 하얗게 보이는 한 구간, 까프친capzin이라고 이름 붙여진 커다란 바위가 있는 도로인데 왕복으로 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을 만큼 좁다. 게다가 지도만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절벽 낭떠러지가 가는 길 오른쪽으로 쭈욱 나있다. 멀미를 할까 봐 거의 먹지도 못하고 차를 타서 속이 엉망인데, 뜨레스 까미노를 도착하기도 훨씬 전부터 긴장으로 인해 명치 쪽이 굳어지기까지 했다.
뜨레스까미노에서 약 30분 정도를 기다리는 사이 만원인 미크로부스가 한네다섯 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곧 다른 미크로부스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승객이 아무도 없어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달려갔는데 왠 걸, 봉고차 맨 뒷좌석 말고는 의자가 없다. 적응되지 않는 고산지대 추위에 언제까지 기다릴 수 도 없었고 오히려 의자 없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바로 올라탔다. 올라 타자마자 까프친을 지날 때 최대한 천천히 안전하게 가달라고 기사 아저씨께 간절히 부탁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만들다가 만 미크로부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창밖으로 나의 이 굳어진 심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해발 9000피트의 고산지대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며 굳어진 명치를 심호흡으로 가다듬는다.
까프친으로 보였지만 아니었던 절벽 몇 개를 아쉬워하며 지나니 진짜 까프친이 눈앞에 보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가는 길에 해가 사라지고 구름이 잔뜩 껴서 엄청난 깊이의 절벽 아래 풍경을 놓칠 수가 있었다. 하얀 도화지처럼 구름으로 가득 차 버려 작은 나뭇잎 그림자 하나조차 찾을 수 없는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찔한 절벽을 상상만 하며 위험천만한 도로를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다. '헬렐루야 하나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싼 후앙 이츠코 san juan ixcoy를 지나 싼 뻬드로 솔로마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오랜 긴장으로 곤해진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 위해 오늘만은 꼭 좋은 호텔을 묵으리라 묵으리라 했건만, 결국은 180께찰짜리 인터넷 되는 센트로 바로 앞 호텔을 포기하고 80께찰짜리 구석 여관방 같은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와이파이가 될 것처럼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시켰는데, 와이파이는커녕 음식도 비싸고 맛도 별로 없었다. 우리가 단순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지마다 그 곳의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항상 음식이 된다.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이다. 꼭 음식 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산 마떼오 익스따땅san mateo ixtatan이지 이곳이 아니니까 하루라도 앞당겨 출발하는 걸로 결론을 내리며 먹다가 남은 음식을 깨작거린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왠 행렬이 우리가 식사를 하고 있는 이 층 창가 아래로 지나간다. 여유 있게 사진을 찍으며 행렬을 바라보는데 한 픽업 위에 어디서 많이 본 아가씨가 전통의상을 갖추어 입고 반대쪽 시장 사람들을 보고 여유롭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바로 '미스 인디헤나-Flor nacional de pueblo maya' 후보 등록일과 본선 대회 때 만난 친구, 싼 뻬드로 쏠로마san pedro soloma의 대표 레이나(여왕) 레띠Lety였다.
이 층에서 "세뇨리따 senorita!" 하고 부르자 픽업 위의 레띠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의 여행 루트를 알지 못했던 레띠는 4시간 넘게 떨어진 쉘라에서 만났던 동양인 부부를 자기 동네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 것 같다. 손으로 큰 입을 가리다 나에게 손을 흔들다를 반복하다가 신나는 마림바 음악과 함께 왼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커다란 또르띠아에 여러 가지 고기와 야채 그리고 소스를 얹어주는 또르띠아 믹스또를 파는 집에서 예상외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가려는 순간 우리를 사방 팔방으로 찾아다니던 레띠와 마주쳤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즐거워하는 레띠는 내일 우리를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우연한 재회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우리 부부는 다음날 레띠와의 약속을 위해 이곳에서 하루 이틀을 더 묵기로 했다. 솔로마는 우에우에떼낭고보다는 조금 더 춥다. 비까지 쉬지 않고 내려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해온다.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할 것이 없는 산동네라 사람들이고 동네 강아지들이고 모두 7시, 8시면 잠이 든다.
20150914 여전히 으슬으슬하다. 그리고 습하다. 여자 몸엔 안 좋을 것 같은 날씨
주일 아침 일어나 전날 레띠가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알아봐 준 에스파뇰로 예배 말씀을 전하는 교회로 향해 예배를 드리고 레띠의 집으로 향했다. 밖에서 보면 작은 슈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이십 몇 평 되어 보이는 큰 마당이 있고, 그 안에 언니 부부와 엄마,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다 같이 사는 분위기였다. 우에우에떼낭고로부터 또도스 산또스를 지나 여기까지 동일한 스타일로 제공되는 설탕이 잔뜩 든 커피와 알이 통통한 노란 옥수수를 대접받았다. 약 한 시간이 좀 넘게 옥수수와 커피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현지식 부엌에 앉아 과테말라의 의상에 대한, 그리고 과테말라의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똑똑한 레띠의 형부에게 아주 살짝 스페인 정복으로부터 독립까지의 역사를 듣는데, 세계사엔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 학구열이란 것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와이파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때 스페인과 중남미 사이에 있었던 오랜 일들에 대한 e-book이나 인터넷 정보 등을 찾아봐야겠다.
중남미 전체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크게 기뻐하며 춤추는 이번 주간, 한 마을의 여왕인 레띠가 우리 부부만 챙길 수는 없는 것이다. 사이클 대회에서 우승한 자에게 상도 줘야 하고 다음날 있을 행진을 우아하게 바라보고 있어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행사가 끝나고 우리 부부가 묵는 호텔에 찾아와 안부를 물어준다.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고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따듯하다. 우린 계회 관 달리 여기서 하루를 더 묵고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보다 딱 한 달 늦는 9월 15일 과테말라의 독립기념일 행진을 여기 솔로마에서 보고 산 마떼오 익스따탕san mateo ixtatan으로 향하기로 했다.
20140915 과테말라와 중미 국가의 독립기념일. 땅은 젖었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좁고 험한 길이 더 미끄러워졌을까 봐 걱정되긴 했지만,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솔로마 마을의 구석구석을 걸어본다. 과테말라 고산지대 마야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마을'처럼 작고 소박하다. 또도스 산토스에 가기 전에 잠깐 들린 우에우에떼낭고쯤은 돼야 '도시'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나마 도시 비슷한 형태를 갖춘다. (시청사도 크게 있고, 우체국도 있고 시장도 크게 형성된) 그 이외의 마을들은 걸어서 15분에서 20분이면 마을을 휙하고 다 돌 수 있을 만큼 작다.
우리는 시골시장에서나 파는 재미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에 마을을 내려다보는 타운하우스 단지 같은 것이 보인다. 집들이 빼곡히 있는 저긴 뭐지? 하고 자세히 관찰하는데 사람들이 사는 단지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들여다보니 왠 걸,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이 동네 공동묘지(sementerio)였다.
중남미 사람들은 죽음과 아주 가까이 마주하고 살아간다. 11월 첫주엔 하루를 망자의 날로 정해놓고 산자들이 죽은 자 들과 함께 파티를 연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자 들의 집들은 항상 산자들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붙어있다. 도로를 달리다가도 중간중간에 세워진 묘비들을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나도 중남미 사람들의 이러한 장례 문화나 사고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공동묘지에 가면 도깨비나 귀신을 본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던 한국인이라면 아마도 거의 나와 같지 않을까?
엘살바도르에 이들의 첫 망자의 날을 우연히 공묘지를 지나가며 지켜볼 수 었는데 무덤 위에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성대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참 지혜로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건, 중남미 사람들과 우리의 죽음을 보는 시선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계속 느게 된다.
커다란 공동묘지 앞에 서서 감상에 좀 빠져있다보니 저 멀리서 행진소리가 다가온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산자들의 축제의 자리로 향했다.
마을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마을의 행진을 통해 우리는 산 뻬드로 쏠로마의 현재를 볼 수 있었다.
여행자들이 느끼기엔 살짝 인상이 구겨질 만큼 위생적이지 못한 마을 산 뻬드로 솔로마는 행열을 통해서 계속 말한다.
Te quiero limpio 깨끗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을은 지금의 마을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손에 일분도 채 쥐지 않고선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만 , 누군가는 열심히 Te quiero limpio를 외친다. 화려한 반짝이 스팽글과 새하얀 레이스로 만들어진 이곳의 위삘같은 마을이 아니어서 나 역시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긴 했어도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청결한 마을의 미래를 외치는걸 보니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솔로마의 위삘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을이 되어있길 기대해본다.
그래도 싼 뻬드로 쏠로마, 왜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느냐 하면,
떠나기 전 맛있어서 두 번이나 사먹은
2께찰짜리 신선한 생감자튀김이 너무 맛있다.
맛있는 쏠로마의 길거리 간식들! 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