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하까, 멕시코- Oaxaca, Mexico
20141009
오아하까, 와하까 혹은 영어식 발음으로 오아싸까라고도 하는데 오아하까-와하까 여기선 이게 맞는 표현이다. 아무튼 오아하까의 가을 날씨는 너무 좋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포근한 날씨. 내가 추운데서 올라와서 그런 건가.
산 크리스토발에서 저녁 여덟 시에 차를 타고 12시간을 달려 아침 8시 오아하까 oaxaca에 도착했다. 모두 잠든 밤사이 서 너 번의 검문이 있었는데 우리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상하게 생겨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검문에서 빠지지 않고 걸렸다. 잠이 들려고 하면 일어나서 여권을 꺼내 주고 또 잠이 들려고 하면 여권과 입국 시 받은 카드를 줘야 하고. 나쁜 말이 앞니 사이로 새어오는 것을 꾸욱 참아 내었다.
멕시코 큰 도시의 터미널에 떨어진 우리는 웬만한 작은 나라의 공항 출국장같이 생긴 터미널 출구에서 할 말을 잃는다.
" 여보, 우리 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이겠지? 집도 없고, 차도 업고. 여긴 어디? 우린 누구? 이런 느낌이겠지?"
라고 궁시렁거리며 커다란 배낭 매고 무작정 걸었다.
돈을 아끼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간다고 딱히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운 좋게도 소깔로 에서 가깝고, 싸고, 맘에 드는 호스텔을 금방 찾아 짐을 풀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 우리는 이틀을 묵을 예정이다.
짧은 시간에 많이 누리려면 시간을 아끼는 수밖에 없기에 비몽사몽 간에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투어를 예약해 버렸다. 씻고 나와 호텔 맞은편 트럭에 아침부터 또르띠야를 굽고 있기에 아침으로 대충 때우려는데. 오우, 버섯 들어간 께사디아가 정말 맛있다. 멕시코는 여행하면서 살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운이 좋게도 투어 버스에 우리 부부와 멕시코시티에서 온 한 중년 부부뿐이다.
닭장 같은 투어버스에 태워져서 졸졸 쫒아 다니며 겨우겨우 스페인어 설명을 듣는 것보다야 훨씬 좋은 옵션이다. 투어는 가격에 비해서 굉장히 알찼다. 모두 다섯 가지 코스를 하루 만에 구경하는 것인데 다섯 군데 모두 흥미로웠다,
#1
버스를 타고 얼마쯤 달렸을까. 우리는 거대한 나무가 보이는 마을에 들어섰다. 예수님 태어나셨을 때 전후 심겨졌을 2000천 년 된 나무고 이름은 뚤레 tule라고 한단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아니고 가장 뚱뚱한 나무라고 보면 된다. 둘레가 가장 넒으니까?
#2
나무를 가볍게 보고 난 후, 양 털을 깎아 실을 만들고 천연의 방법으로 염색을 한 후 직물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가게에 들렀다. 사라고 들린 것 같은데 도무지 백팩커들이 살 수 있는 직물이 아니다. 무겁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인디헤나들의 직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게 구경했다.
#3
그리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코스 이에르베 엘 아구아 hierve el agua.
돌아와 흥분된 상태에서 내가 보고 온 이 하늘 호수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지인이 바로 댓글을 달더라.
'벌써 천국에 가신 건가요?'
천사가 수영하려 잠시 내려오려고 산 위에 살짝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들한테 들킨 건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 신랑이랑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풍덩! 빠지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차가운 물 온도에 살짝궁만 빠졌다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 두개의 호수는 천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수영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만들었어도 가끔 천사가 내려 올 것 같지만.
저 멀리 보이는 건 석회암 폭포다. 멀리서 보면 정말로 폭포 같은데 사실은 물이 아니라 단단한 돌이다. 터키에 이런 석회암 지형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바로 파묵칼레인데, 그래서 다들 여기를 멕시코의 파묵칼레라고 부른다.
아! 그리고 이건 꼭 써야지.
이에르베 엘 아구아 입구엔 음식 반입 금지라고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다. 그런데 가장 크고 전경 좋은 호수 자리에서 술병을 이만큼 가져다 놓고 담배 피우며 놀던 외국인들이 있었다. 정말 국제적 진상들인 것 같다. 아무도 그 호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다.
#4
식사 후, 사포텍 문명의 유적 미틀라Mitla에 갔다. 정교한 사포텍 사람들의 솜씨에 놀란 부부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멕시코 명예 관광 대사도 아닌데 '이 아름다운 장소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어!'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사포텍 포스팅은 다음 기회에 몬떼 알반과 한 번에 하기로 한다. 한 줄 짧은 글로 남기기엔 너무 강렬했다.)
#5
마지막으로 메스깔 mezcal이라는 술을 만드는 공장에 가서 술을 만드는 법을 보았다. 아까는 무거워서 못 샀는데 이번에는 우리 부부가 독한 술을 못 마시므로 구매를 해 주지 못했다. 메스깔은 먹으면 메스꺼워서 메스깔이라는 메스꺼운 농담이나 하면서 같이 차에 타고 있는 멕시코 아주머니가 몇 잔 시음하고, 또 몇 병을 사서 돌아오실 때까지 구경만 하다 돌아왔다.
투어 후, 돌아와 그 피곤한 와중에도 베인떼 데 노비엠브레20 de noviembre , 한국말로 십일월 이십일 시장에 있는 고기 골목에 들러 고기를 먹는 대단한 우리 부부의 초상과 마주한다. 1키로, 두 근에 달하는 소고기와 곱창을 시켜 놓고 말없이 먹고 돌아오는데 이 동네, 거리 곳곳마다 먹을거리가 너무 많다.
아무래도 이틀로 잡아 놓은 우리의 계획은 '아주 잘못 짠 계획'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