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사나이

바름생활 사나이

by 코코조조

할머니가 내게 지어준 별명은 많다. 그중 하나는 ‘바른생활 사나이’이다. 나는 천성이 착한 짓만 골라했다. 할머니와 부모님이 나를 칭찬하며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불러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점차 대가리가 커지면서 ‘착하게 생겼다’는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하고 난 다음부터는, 집 밖에서 착하게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어릴 적처럼 뿌듯해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마음속에 반항아를 키웠다. 남들이 즐겨 듣는 인기가요 순위 음악은 듣지 않고 외국 록 음악을 즐겨 들었다.


이후 내 마음속 바른생활 사나이와 반항아는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 나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몰랐다. 어떤 때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어떤 때는 반항아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나는 결국 바른생활 사나이의 손을 더 많이 들어줬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로 사는 건 항상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내가 편하기 위해 바른생활을 했던 것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람’이기를 원했다. 내 마음속 바른생활 사나이는 그런 타인의 기대를 반드시 충족시켜 주려한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참 피곤하게 살았다.


내 마음속 바른생활 사나이는 점차 나 자신이 되기를 원했다. 나의 ‘부분’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이런 반역을 확연히 느낄 때가 바로 블로그 영화 리뷰를 쓸 때였다.


나는 에세이를 쓰기 전에는 주로 영화 리뷰를 썼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삶의 지침서가 되길 바랐기에 글을 정말 공들여 쓰고, 고치기도 많이 고쳤다. 얼마나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가?


하지만 요즘은 ‘바른 삶’이란 각자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받아들이게 되고, 바른생활 지침서 편찬이 아니라 심심풀이로 글을 즐겁게 쓰게 되자, 내가 이전에는 글을 정말 스트레스 받으면서 써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고,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쓰다 보니 말이 너무 많아졌다. 내 마음속 바른생활 사나이 그리고 반항아 이제 그만 나를 귀찮게 하도록.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