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수업
다시 선택한다
기적수업의 가르침은
오류의 교정을 성령에게 맡기라고 한다
이는 다른 말로
바보같은 짓을 보더라도
무시하고 지나가라는 말이다
수업은
이 세상을 고치라고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진짜로 여기는 마음을
성령에게 주라고 한다
나는 오늘
심심해서
세상의 바보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기적수업은 마음의 훈련이다
‘심심하니까 이 정도 오류를 지적하고 놀아도 괜찮겠지’라는 에고의 욕구를 바라보고
심심함이 실재에 대한 방어의 결과임을 알아차리고
심심함이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바라보면 된다
여기까지가 기적수업의 정석적인 가르침이다
나는 이 방법을 꽤 오랫동안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 방법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나는 이게 에고의 저항인지도 모른 채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뭘 하라는 거야?
똥 보고 똥이라고 말도 못 해?‘
오류의 교정에 대해 성령에게 맡기라는 말은
그 잣대가 자신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고
진실을 말하면 타인에게 공격받을 위험도 있어서
오류를 교정하지 말라는 거라면
그 잣대로부터 내가 안전하고
진실을 말해도 안전하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음..
똥을 피하라고 말해주는 게
상대방을 도우려는 행위이구나..
그냥 스스로 똥 밟고 미끄러지지 면
거기에 똥이 있는 걸 알게 되는데
내가 굳이 알려주려는 건
내가 그를 도우려 들기 때문이구나
내가 그를 도우려 들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었구나..
그리고 똥을 보면 실재는 볼 수 없다
마음은 둘 줄 하나만 볼 수 있다
똥을 보면 실재는 못 보고
실재를 보면 똥은 못 본다
마음이 똥을 보고
이똥은 저렇고 저 똥은 이렇네라고
지적하며 놀도록
내가 허용하면
결국 수업의 수단이자 목표인
마음이 똥을 그만 보도록 수련하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후.. 쪽팔리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다
다시 선택하련다
정치인의 옳고 그름도
심리상담의 옳고 그름도
위선자들의 옳고 그름도
지식인의 옳고 그름도
모두 의미가 없다
그리고 취미는 다른 걸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