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 쉽지만 풀지 않으려는 딜레마

명절스트레스에 대한 짧은 글

by 코코조조

최근에 <그래도 나는 아내와 하고 싶다>라는 일본 드라마를 봤다. 18금적인 요소는 전혀 없지만 주인공의 구차함과 찌질함은 60금 정도 되는 수위였다. 나는 미혼이라 이런 상황은 아주 생경한 경험이라 재미있게 봤다.

그렇다 관찰자 시점에서는 이런 지옥 같아 보이는 주인공의 삶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밖에 안 보인다.

주인공은 결혼은 했는데 전업주부이며 아내에게 무시받으며 산다. 아들에게도 무시받으며, 동네 주부모임에서도 무시받는다. 이방인도 이런 이방인이 없다. 주인공이 더 처절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아내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섹스를 요구하는데 모두 거절당할 때이다.

주인공을 유일하게 무시하지 않는 인물은 주인공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어머니의 문제는 주인공을 지나치게 아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모임 자리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을 무시하는 주인공의 아내를 남편한테 잘하라고 구박한다. 안 그래도 아내는 주인공이 싫은데 더 싫어진다.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제목이 <그래도 나는 아내와 하고 싶다>이듯 주인공의 목적은 아내와의 섹스 말고는 없다. 주인공이 아내를 가족행사에 데리고 가지만 않는다면, 주인공은 아내와 관계가 더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인간의 마음(자아)은 즐거운 자극이나 고통스러운 자극 상관없이 자극이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게 떠오른다.

주인공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나의 모습이 주인공과 겹친다. 나는 어머니와 갈등이 생길만한 여자친구도 없는 홀몸이지만, 그냥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갈등이 생긴다. 내가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진 않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잔소리를 할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나의 풀기 쉽지만 풀지 않으려는 딜레마는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어머니가 명절이기도 하니 내일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라고 연락을 하셨다. 나는 '명절쯤이야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허락했지만 당장 집에 가기 하루 전에 명치에서 퉁퉁 붓는 듯한 스트레스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시... 그냥 안 간다고 할 걸 근데 왜 스트레스 반응이 오는 거지?'

'아마 잔소리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잔소리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되잖아'

'그건 똥에 의미를 두지 않고 먹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야'

남에게 선택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는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습관적으로 마음이 편한 쪽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는다.

나는 습관에서 벗어나

집에 갔을 때와

갑자기 가지 않겠다고 말할 때를

상상하며 마음을 관찰했다.

명백히 가지 않을 때를 상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럼 나에게 다시 묻는다.

방금 전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감수하려고 했는가?

첫째. 내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나의 철칙 때문이다. 이게 거절을 못 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이 철칙은 사실 타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지킨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얼 위해 신뢰를 얻으려는가? 나는 어머니에게 얻고 싶은 게 없다. 따라서 나는 했던 말은 지켜야 한다는 철칙 때문에 거절을 해도 상관없다.

둘째. '명절이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난 이제 내 마음이 편한 걸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기로 했다. 명절이니까 한번은 봐야 한다는 그런 의미 부여는 거절하겠다.

셋째. '명절 음식 많이 해놨을 텐데 가서 좀 먹어줘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건 이미 예전에 파훼했다. 어머니가 음식 했으니까 오라고 했을 때 그냥 주변 사람 나눠드리라고 말했다.

따라서 나는 효도를 위해 나를 희생하여 의례를 지키려 가지 않겠다.

​물론 '나'라는 자아는 허상이며, 자아를 초월하면 어떤 공격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자아를 초월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잔소리는 나의 명치를 심하게 부어오르게 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명절에 집에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 둘 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무얼 위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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