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기적 수업이 주는 기적은
기존의 배움은 모두 버리고
기적 수업을 공부하기로
스스로 선택한 학생만이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기적 수업의 가르침의 진보성은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를 앞서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은 비이원론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적 수업은 비이원론보다 더 앞선 가르침이다
그리고 신학•심리학•철학적 배경지식이 있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또 한 가지 대중이 기적 수업을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은
수업이 쓰여지게 된 배경이다
1977년 예수가 채널링을 통해
세계 최정상급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교 의과대학 산하 의학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던 헬렌 슈크만 임상심리학 교수에게
<기적 수업>을 받아 적게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임상심리학은 채널링을
현재보다 더 비과학적으로 봤는데
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심리학 교수가
예수의 음성을 채널링으로 받아 적었다는 아이러니는
지금 떠올려도 참 신기하다
당연히 헬렌 본인은 무신론자 + 과학적 사고의
임상심리학자였기 때문에,
예수의 음성이 들리는 현상을
극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수업을 받아 적는 작업을 했던 헬렌과과 빌은
극소수(가까운 몇 명)에게만 이 사실을 공유했고,
공개적으로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자 이제 얼마나 많은 의심을 거쳐야
기적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지 정리해 보겠다
일단 헬렌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가 환청인지
예수의 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채널링이란 비과학적인 현상이 일어났다는 걸
어떻게 믿을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인데
시공간 우주 자체가 꿈과 같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정체성도 포함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에 불과하며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비롯한
이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꿈속에서 움직이는 몸이 아니라 꿈을 꾸는 자이다
심지어 꿈꾸는 자는 신과 완벽히 하나이며
꿈에서 깨어나면 신과 동등한 권능을 가지고
신과 함께 공동 창조를 해 나간다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이 의심을 해소하려면 수업을 공부해야 한다
수업안에 수업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의심해서 읽지 않으면
의심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의심보다 호기심이 더 커서
기적 수업을 공부했다
수업에서 예수는 모든 꿈꾸는 자는 형제이니
가르침을 공유하여 함께 오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를 바보로 보던지
사이비 신도로 보던지 상관없이
기적 수업의 가르침을 전파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건 알아도
기적 수업의 가르침은 틀릴 수 없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적 수업을
읽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배울 준비가 된 어딘가의
단 한 명을 위해서라도
수업에 관한 글을 적을 것이다
수업 191과.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다
9. 부질없는 희망과 파손된 꿈을 지닌 채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여기는 너,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났고, 슬피 울며 고통당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여기는 너는 이 말을 들으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너에게 주어졌다. 네가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너는 네게 일말의 자비도 보여주지 않는 세상에서 비참하게 소멸에 묶인 채 무력한 존재로 죽어가는 놀이를 한다. 하지만 네가 세상에 자비를 베풀면 세상의 자비가 네게로 빛날 것이다.
10.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잠에서 깨워, 거룩한 눈을 뜨고 자신이 만든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다시 돌아가게 하라. 세상은 오류 속에 시작되었지만, 그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속에서 끝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잠들어 죽음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나와 결합하라. 너의 영광은 세상을 구원하는 빛이다. 더 이상 구원을 지체하지 말라. 세상을 둘러보고, 거기에서 괴로움을 보라. 너의 가슴은 지친 형제들에게 기꺼이 안식을 가져다주지 않으려는가?
"기적수업 합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