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에세이

by 코코조조

지금은 건강 염려를 거의 하지 않지만, 10년 전 나는 건강염려증이 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너무 지나친 염려로 인해 몸이 약해진 것인데 나는 몸이 약해지면 주변 환경 탓을 했다. 어머니의 음식 탓을 많이 했고 어머니의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지만 건강이 안 좋다고 절제했고 그 밖에도 몸이 안 좋다는 건 다 가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나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지금의 관점으로 바라본 과거의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기에 정신만은 매우 건강해 보이고 싶었고 심지어는 남들보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내세우고 싶어 했다. 심각하게 쿨하고 찌질하고 겁이 많은 놈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나의 고쳐야 할 부분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자신을 적당히 쿨하고 세련됐으며 겁이 없는 남자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상담 센터에 취직을 했다. 가난한 대학원 생활에서 벗어나고 드디어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업된 기분은 한 달도 유지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와 둘째 누나가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걸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해야 했고 회사는 직원들 간의 알력 다툼과 신경전을 보고 있자니 기가 너무 빨렸다. 난 최대한 에너지를 뺏기지 않으려 일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표적이 되었다. 시끄러운 곳에는 조용한 사람이 튀게 마련인 걸 그때는 몰랐다. 게다가 같은 사무실에 유일한 남직원인 중년의 상사는 단둘이 있을 기회만 되면 나를 붙잡고 한참을 설교를 했다. 상담은 어떻게 해야 하며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백만까지 알려줄 기세였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거절해야 되는지도 몰랐기에 그저 속으로는 질색하며 겉으로는 공손히 듣고 있을 수밖에.

그렇게 주 5일 눈뜨고 눈 감을 때까지 지옥 같은 가정생활과 직장 생활이 반복됐다. 그나마 유일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영화와 음악이었다. 나는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고 시간이 나면 영화를 즐겨 봤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근처 지하철역 상가에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가 들어섰다. 깔끔한 디자인의 간판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고 언제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카페가 영업을 시작했다. 카페는 음악을 가게 바깥까지 들리도록 크게 틀어놨다. 나는 가게에 들어서 주문하려 사장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영화배우보다 예쁜 사람이 나를 바라봤고 항상 쿨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던 나는 예쁜 사람을 보고 얼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침착한 연기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샌드위치는 언제 만들었나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질문이다. 먹지 못할 거라면 팔지도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매우 독특하게 귀여웠다. 사장님은 새벽에 만들어서 판다고 대답해 줬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안심하고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발걸음의 경쾌해진 것을 알 정도로. 그리고 사장님은 나의 이상형이었다. 나의 이상형은 중경산림의 왕페이였는데 얼굴이 예쁘건 물론이고 톡톡 튀는 발랄함마저 똑같았다.

나는 일하지 않을 때는 항상 사장님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지 항상 생각했다. 단골이 되자 사장님과 나는 주문 이외에도 말을 한두마디 더 할 수 있었다. 나는 퇴근 후 친구와 약속이 잡히면 샌드위치를 사서 친구에게 줬고. 이게 매번 반복되자 친구들은 자연스레 내가 카페 사장님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시내에서 사장님을 닮은 작은 포켓몬 피규어를 뽑아서 사장님께 선물했다. 그리고 다음날 피규어는 계산대 위에 놓여 있었다. (고라파덕 아님 고라파덕은 나를 닮았음)

어쩌다 보니 우리는 가끔씩 간식을 주고받게 되었다. 사장님은 커피와 샌드위치 말고 작은 간식을 내게 줬고 나는 받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나도 작지만 쉽게 구하기 힘든 간식을 챙겨줬다. 사장님은 주문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게 주면서 내 나이가 몇인지 어디서 일하는지 주말이 뭐 하는지 하나씩 물었다. 능숙한 사람 같으면 그걸 잘 받아서 대화를 이어갔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사장님 앞에만 서면 너무 떨려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연기에만 온 힘을 썼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이 했었다.

‘내가 만약 데이트 신청해서 거절당하면 쪽팔려서 여길 어떻게 지나다니지? 어기는 출근할 때 꼭 지나야 하는 곳인데..‘

심지어는 이런 생각도 했다

‘데이트 신청하면 앞으로는 샌드위치를 사 먹을 수 없으니까 고백하면 안 돼’

이렇게 데이트 신청하지 않는 걸 정당화했다. 그리고 사장님은 항상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나는 용기 내서 그 반지 커플링이냐고 물어보질 못했다. 그렇게 사이좋은 단골 고객과 사장님의 관계가 유지되는 듯했다

한때는 카페 알바를 했었던 새로 입사한 여직원을 출근길에 만나 카페 앞에서 주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여직원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가게 사장님이 코코조조님 뜨아 주문할 때 얼음 한 조각 넣어줬네요. 신경 써준 거 같은데요?"

일일이 적어 놓기엔 도끼병 환자처럼 보일까 봐 적어놓지 못한 사랑의 단서들이 몇 개 더 있다.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난다. 지금 생각하면 죽이 되던 밥이 되든 간에 데이트 신청을 한 번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생각이 많았고 지금보다 더 수전노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월급이 최저임금수준이었으며 더 높은 전문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없는 형편에 허리띠를 졸라매 수련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사장님을 만나서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돈 없는 연애를 학생 때 너무나 질리도록 했다. 과거 여친은 돈이 없어도 없는 데로 잘 만나줬다. 그치만 나는 항상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과 데이트 비용을 신경 썼다. 이 불필요한 미안함과 돈이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도 종종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지 못했나 싶다. 그렇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출근길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샀다.

그러다 내 인생의 무대에 불쑥 등장한 사람은 B였다. B는 내가 다니던 센터의 프리랜서 상담사였고 어느 날 퇴근길 나와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 같이 지하철을 타게 됐다. 나와 B는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어색함을 피하려 몇 마디 주고받은 대화가 중단되지 않고 쭉 이어졌다. 그녀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매우 착했고 상냥하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잊지 않고 잘 간직한 사람이었다. B는 센터에서 매우 조용히 다녀서 나는 B가 그런 매력 있는지 몰랐다.

어느덧 나는 사장님과 B를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B는 나에게 호감을 내보였고 사장님과 나는 가끔씩 간식을 주고받았다. 사장님은 너무 예뻐 부담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고 B도 보통 이상의 외모였지만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몇 가지 기준으로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가늠해 봤지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사장님은 사고 싶지만 비싸서 살 엄두를 못내 쇼윈도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보석 같았고 B는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찾아볼 수 없는 길가에 숨어 피어있는 꽃 같았다

결국에는 B와 사귀게 되었고 여느 커플처럼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고 사랑의 열기가 식어갈 때쯤 사장님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B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했고 나는 그 심정을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에 남겼는데 운명의 장난인 건지 몰라고 어찌어찌해서 그 다이어리를 B가 보게 되었고 B와 나는 헤어질 뻔했다. 나는 겨우 B를 붙잡았다. B는 내가 샌드위치를 아침마다 사 먹는 걸 알고 있었고 한두 번 나에게 그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다 준 적도 있기에 충격이 좀 컸을 것이다.

그 후 나는 B에게만 집중했다. 나의 실수에도 B는 내게 항상 잘해줬고 나도 최선을 다해 B를 사랑했다. 연애 기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B와 나는 명절에 서로의 집에 선물을 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나는 B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머니와 따로 독립해서 살고 있는 게 B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때 나는 어머니와 둘째 누나의 끊이지 않은 싸움에 지쳐 원룸으로 이사해 살고 있었다. 그 후 둘째 누나도 집을 구해 나가 살았고 어머니는 혼자 살고 계시게 됐는데 나는 B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이제 어머니와 누나가 싸우는 소리를 듣지 듣지 않아도 되니 독립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 집에 돌아갔다.

이게 화근이었다. 이젠 나는 어머니와 거의 매일 싸웠고 점점 그 싸움에 지쳐갔으며 기 빨리는 회사 생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이대로 가면 B와 결혼해야 했지만 나는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 자신이 없었다. 기운 없어 보이는 나를 곁에서 지켜보던 B는 나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 노력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B가 예전처럼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머니와 나는 자주 싸웠고 센터 일은 항상 과중했고 사무실은 항상 기가 빨렸다. 나는 더 이상 B를 사랑할 기력조차 없었고 나는 B를 떼어냈다. B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만 그래도 나는 헤어졌다. B를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래된 연인에게 사랑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사랑이 없다면 그건 교재의 의미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고 의미 중독자였던 나는 의미가 없는 행위를 억지로 한다는 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거였다. 나라는 자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의미 타령하며 B와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어머니와도 싸우지 않았을 거지만. 그때는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센터를 알아봤지만 내가 일하고 싶은 대학상담센터의 벽은 높았다. 자존심 때문에 전 직장에 돌아갈 수 없었고 전국의 대학 상담 센터에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어머니와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야만 했다.

나는 대학상담센터는 내가 도전할 레벨이 안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서울의 한 지역의 구청에서 이벤트성 단기 계약직에 지원하고 합격했다. 나는 그렇게 광주를 떠났다. B에게 상처 줬다는 자책과 어머니와의 갈등을 모두 고향에 내버려둔 채 나는 떠났다. 그때부터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몇 년 뒤 B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그럼에도 B에 대한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과거를 바라보며 이런 상상을 한다. 같은 영화를 한 번 보고 다른 결말을 보고 싶어서 감독판을 보러 다시 영화관에 가는 것처럼.

나는 전생에 사장님과 맺어졌지만 사장님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해어졌고 평생 그걸 후회하며 살다가 죽게 되었고 이걸 만회하기 위해 다른 생으로 윤회를 하지 않고 기억을 다 지운 채 사장님과 이어지지 않은 선택을 하기 위해 전생의 전반부가 같은 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옛날에 유행했던 TV인생극장처럼 말이다

(영포티 코코조조의 요즘 애들은 모르는 TV인생극장 설명: 특정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가, 주인공이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와 함께 선택한 루트의 전개를 하나씩 확인하게 된다.

선택사항은 보통 이익은 볼 수 없지만 도덕적인 선택과 이익이 따르는 부도덕한 선택으로 나누어진다. 보통은 권선징악적 내용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면 나중에 그게 복으로 돌아오고, 부도덕한 선택을 한 것은 일이 꼬여 망하는 스토리가 많다. 물론 도덕적인 선택을 한다고 다 잘 풀리는 건 아니고 '다 말아먹었지만 사랑을 확인한 우리는 마음만은 부자' 같은 엔딩이나, 결과적으로 그냥 소시민적으로 살게 되면서 그때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엔딩이 나는가 하면, 뭘 선택하건 시궁창인 엔딩도 종종 있었다. 즉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만이 행복을 결정한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한 게 그때의 나의 인성은 상당히 문제가 있어서 누굴 만나도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라는 사고방식이 매우 강했고 누굴 만나도 사랑이 식으면 그 사람의 틀린 점을 찾고 그걸 트집 잡거나 은근슬쩍 그걸로 상대방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영화감독판의 결말이 더 비극이듯이

같은 생을 다시 살아 그 사장님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좋은 단골로 남았지만 대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 자신도 파멸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B를 떠올릴 때마다 일편단심으로 나를 사랑해 줬던 B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쓰라렸지만 이젠 헤어진 게 최선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때 B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마음이 병들었던 나는 B와 계속 만나면서 이별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줬을 것이다.

이젠 다행히도 추락을 멈췄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선택을 아무리 다시 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나의 병든 마음을 치유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만나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병든 마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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