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은 마지막라운드까지 가야하나? 1부

에세이

by 코코조조

(시공간우주의 비밀은 관찰자인 당신이 사각링의 복싱 선수가 되거나 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악연과의 난투극은 선수로서 모든 라운드를 모두 마쳐야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든지 기권을 선언하여 멍들고 피흘리는 선수에서 팝콘을 먹으며 경기를 즐겁게 바라보는 관객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바람을 피우셨는데

그걸 아버지에게 들키셨고 그때 집안이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나는 군대에 전역을 하고 누나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냥 무덤덤하게 넘겼다.

사실 아버지가 평소보다 술을 많이 드시기 시작한 건 그때 이후였던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내가 둘째 누나랑 싸워서 가출을 해서 아버지의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지만.

어머니를 원망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에 반대를 했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울증으로 고생한 ‘불쌍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고 집이 들어가면 어머니는 곧 죽어가는 사람처럼 누워 계셨다

나는 그 책임이 가정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고통의 책임은 나에 있다는 걸 받아들였듯이

타인의 고통의 책임도 전적으로 타인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책임을 카르마(업보)라고 한다

뉴에이지에서는 ‘착한‘일을 많이 해서 카르마를 청산해야 한다고 하지만

기적 수업에서는 카르마를 청산하지 않고 피해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에고와 동일시하면 이 우주의 카르마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에고와의 동일시를 해제하면 카르마로 인한 죄책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허상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허상을 진짜로 여긴다면 허상과 허상이 얽히고설킨 언제부터 꼬여왔는지 모를 문제들을 모두 감내해야 한다

허상과의 동일시에서 벗어나면 자유와 평화로운 상태에서 문제들을 바라보고 그 문제들의 그림자인 죄책감으로 인해 내리지 못했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노는 게 좋아서 누워계신 어머니가 와서 손을 잡아달라 하셨을 때. 조금만 잡아드리고 금방 게임을 하러 컴퓨터 앞으로 가곤 했다.

어릴 적 운동회에 어머니는 친구들 어머니들과 비교해서 가장 예쁘셨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름답고 사랑을 듬뿍 줬기에 소중히 지켜야 하고 도와줘야 할 존재였다.

한편으로 나는 과거를 떠올리면 그런 어머니 손을 좀 더 잡아 주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인생사 돌아보면 동정심과 연민이 이렇게 야금야금 가지지 않아도 될 죄책을 키우고 기력을 소진 시킨다. 사실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남을 도와고 싶은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일요일 오후의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