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늙음에 당도하다.

늙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움도 아니잖아요!

요 며칠 눈이 깔깔한 것이 염증이 생긴 듯하다. 나이도 있고, 식사도 줄이던 차에 장염과 감기가 한꺼번에 와버렸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안 아픈 몸’이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늙음’이란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라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속 낯선 얼굴이 나를 뚫어보았다. 무심히 지나치던 세월이, 잊히듯 흘러가던 노안과 노년의 기미가, 한순간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누군들 알았겠는가. 이렇게 빛의 속도로 늙음에 당도하게 될 줄을.


나는 끝내 만년 청춘으로만 늙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욕심이었을까.

“50에 소프트렌즈를 끼시다니… 이젠 그냥 안경 쓰세요.”
아, 네……(미운말 참 건조하게 잘하시네.. 안과선생님...!)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느지막한 나이에 괜한 심술이 붙어 투정 부리고 싶었을까… 자꾸만 지절 댄다…


왜, 50이면 렌즈를 끼면 안 되는가. 미용의 목적이면 더더욱 안 되는 건가. 이제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좌절과 죄책감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여자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예쁜 속옷을 고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단장한다. 그게 어째서 죄인가.

아이들도, 사회도 말한다.
“엄마, 눈 건강을 위해서라도 안경 써요.”
하지만 내 눈은 책만 보려고 달린 게 아니다. 못생긴 얼굴이라도, 여전히 나를 비추고 싶어 달린 눈인데. 그걸 몰라주고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라니, 참 서럽다.


젊음의 싱싱함이 부럽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살아보려 애쓴다. 하지만 예전의 탄탄했던 몸이 이제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작고 정교했던 기능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간다. 그 사실이 원통하고, 왠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제 와서 한탄만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마음이 바짝 약이 오른다.

다른 즐거움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마음이 영 따라주질 않는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저 누워 있고만 싶다. 누가 내 맘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좋은 향을 맡아볼까. 요즘은 미모사 향이 좋던데. 봄에 피는, 따뜻하고 이기적인 색의 아기아기한 향기.
아니면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묻는다.


‘그래서, 지금 네가 바라는 게 뭐냐고.’

젊음인가? 날 인조인간으로 만들어줘!... 일까? 영원한 젊음을 원하는 거냐?


몸무게는 늘었고, 허리둘레는 예전보다 훨씬 넉넉하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고, 세상은 내게 점점 등을 돌리는 듯하다. 모든 게 엉망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이 엉망의 순간조차도 내 인생의 한 장면이라는 걸.
늙음이란 어쩌면,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익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렇지 살아있지. 모든 예술적 감각이 모두 훌륭하게
오늘도 내 눈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으니까.

글로 나를 정화시켜 보지만.... 그래도 나 슬픈걸... 어쩌지?!

옆에 있던 남편이 위로의 한 마디 건네준다.

“자기는 안경을 써도 예뻐요”... 거짓인 줄 알고 있지만,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또르륵,,, 바로 난 흔연스럽게 웃으며 기분이 나아진다. 역시 내 편은 알천 같은 옹리!! 당신이야! 사랑해 봉봉.


지금 이 순간만은 진정!




*알천 같다 : 여럿 중에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다

*흔연스럽다 :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듯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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