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자주 가는 편이다.
정확히는,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책 말고 내 발이 먼저 찾아가는 책 앞에 서고 싶어서.
요즘은 '인문학' 코너 앞에 자꾸 머물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이 코너가 언제부터 이렇게 촘촘해졌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시간 동안 대학 캠퍼스에서는 인문학이 조용히 지워지고 있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서울 소재 대학에서만 무려 330개의 인문·사회 계열 학과가 통폐합됐다.
2025년 한 해만 100개.
'쓸모없다'는 이유로 지워진 학과들. 그 목록 속에는 철학과도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빛나는 역설처럼 — 바로 그 '철학'이, 지금 AI 시대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 철학은 '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질문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한번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왜 일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모두 철학적 물음의 변주다.
트렌드 분석들이 2025년 도서 키워드로 꼽은 것도 '존재', '의미', '가치'였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이 무엇인지를.
평일 오전, 나는 습관처럼 챗GPT에게 오늘 할 일을 물어본다.
그런데 문득 이런 날이 있었다. "이 일이 왜 중요한가?"를 GPT에게 물었더니 그럴듯한 문장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답들은 — 나의 맥락이 빠져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 '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이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AI는 '최적의 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아는 건 나뿐이다. 철학은 그 '나'를 찾는 훈련이다.
'철학(Philosophy)'은 그리스어 필레인(φιλεῖν, 사랑하다)과 소피아(σοφία, 지혜)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 '지혜를 사랑한다.'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한다'는 태도.
그 태도가 인류를 수천 년 동안 앞으로 움직여 왔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을 때, 그것은 데이터베이스를 채우라는 말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왜'를 묻는 태도 — 그것이 인류 문명의 엔진이었다.
그리고 지금, AI는 그 '왜'를 묻지 않는다. AI는 주어진 목표를 최적화할 뿐이다.
목표 자체를 설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 시대 '철학'을 일상에 적용하는 핵심 팁 3
① 질문의 품질이 결과의 품질을 결정한다 AI 프롬프트의 수준은 곧 사용자의 사고 수준이다.
'무엇을, 왜 묻는가'를 명확히 할수록 AI 활용 능력이 급격히 높아진다.
② 윤리적 판단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AI가 생성한 결과에 '이게 맞는 방향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철학은 그 판단력을 키우는 근육 훈련이다.
③ 철학적 소양은 AI 협업 설계 능력이다.
팔란티어(Palantir) 창업자 알렉스 카프 — 신고전주의 사회철학 박사.
국내 생성형 AI 스타트업 뤼튼 창업자 이세영 대표 — 문헌정보학 전공.
'철학적 문제 정의 능력'이 AI 시대의 창업 무기가 되고 있다.
AI가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시대, 결국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그래서 당신은 —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이 시대는 모든 것이 재정의되고 있다. 직업도, 교육도, 관계도.
그 재정의의 중심에는 항상 '가치'라는 개념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정하는 것이 — 바로 철학의 역할이다.
나는 요즘 일상에서 매일 아침 세 가지 질문을 메모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지금 내 선택이 10년 후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내가 살고 싶은 세계를, 나는 오늘 얼마나 만들고 있는가?
거창한 철학 수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을 하루에 한 번 꺼내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 — '내 삶의 의미'를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앞으로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더 빠른 실행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에서 나온다.
철학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훈련이다.
사라지고 있다고 했지만 — 실은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부터 사라진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