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엠티, 30대가 껴도 되나요?

5부 이 나이에, 다시 의대로 갔습니다-입학식, 엠티에 참석하다!

by 코코넛

'00대학교 의과대학 입학식 안내드립니다. (이하생략) 입학식은 부모님과 동행 가능하며, 별도의 주차권이 제공됩니다'


고민 끝에 한의대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의대에 등록금을 납부했다. 돈을 내고 나니 진짜 '의대생'이 됐다. '입학식' 안내 문자가 온 것이다. 입학식,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단어다! 하지만 나에겐 입학식마저 고민거리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는커녕 일단, 입학식에 참석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 나이에 입학식에 가는 게 맞을까?'
'내가 입학식에 가면 학부모로 착각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앞섰다. 그럼에도,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입학식이니 참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입학식에 갈 때는 너무 30대 티가 나지 않게 옷을 입으려고 신경을 꽤나 썼다. 회사원티 나는 블라우스가 아닌 남방을, 슬랙스가 아닌 청바지를 골라 입고 나섰다.


입학식 당일, 의과대학 건물 앞에 교수님들이 나와 반겨줬다. "어서 와 학생들은 앞으로 가서 앉으면 돼" 어랏. 나에게 반말을 한다! 그럼 일단, 날 학부모로 착각하진 않았다는 소리다! 반쯤 성공했구나 싶었다.


입학식에선 학장님과 교수님들이 의대 커리큘럼을 소개를 한 뒤, 학생들과 학교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강의실과 학교 시설들을 소개해줬다. 교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중에는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바로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나사(나이가 많은 사람들)' 동기들이다. 또래는 또래를 알아보는 법! 우린 첫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딱 봐도 고등학교를 갓졸업하고 온 사람과 사회의 떼가 묻어있는 이는 아우라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대에선 본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희귀하다. 물론 재수, 삼수생들은 많지만 나처럼 사회생활까지 하다 온 20대 후반, 30대는 별로 없다. 한의대보다 의대는 공부난이도와 전문의 수련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하나, 최근 들어서는 그 숫자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덕분에 나는 또 또래 동기들 몇 명고 얼굴을 익히고, 번호교환을 했다. 이날 입학식의 최고 수확이라면 든든한 동기들을 얻은 것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이 날 만난 동기들 중엔 내 고등학교 동창도 있었다. 역시 좁은 세상!


무난하게 입학식을 마치고 며칠 뒤, 학년 전체 단톡방이 개설이 됐다. 그 단톡방에서 나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공지한통이 날아왔다. '엠티 참석 수요조사'였다. 입학식은 그럭저럭 잘 넘겼는데, 엠티라면 말이 다르다. 엠티라면 자고로, 방바닥에 다 같이 앉아서 먹고 마시고 놀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자리에 30대인 내가 끼는 게 맞을까? 입학식에서 만난 회사 다니다 온 동기들에게 바로 카톡을 보냈다.


"너 엠티 갈 거야?"


그러자 곧바로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너 가면 갈래"


그렇다. 혼자 엠티에 끼긴 부담스럽지만, 내 또래 동기 한 명만 있으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너 가면 갈래'라는 동기의 말에 힘을 받아 우린 손을 잡고 같이 엠티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린 친구들이 날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낄낄 빠빠'하자는 심정으로 엠티에 가기 위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엠티의 형식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조별로 구호와 이름을 만들고 레크리에이션을 한다. 나이가 가장 많은 나는 자연스레 조장이 됐고, 같은 조가 된 친구들은 꽤나 우호적으로 날 대해줬다. 그리고 우리 조는 생각보다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잘했다!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추는 '인물퀴즈'를 했는데, 거기서 충격적이 장면이 하나 있었다. 세대가 다르다 보니, 익숙한 유명인들도 달랐던 거다!

큰 화면에 배우 한석규의 얼굴이 떴는데 스무 살인 친구들은 이름이 즉각 즉각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아 저 사람 많이 봤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뒤이어 나온 배우들 최민식, 박중훈 등도 스무 살 친구들에겐 얼굴이 익숙할 뿐 이름까지 익숙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세상에! 생각해 보면, 올드보이가 2003년에 개봉한 영화니 이 동기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다. 충분히 이름을 헷갈릴 만도 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내가 신영균 같은 배우를 어렴풋이 아는 것과 비슷한 걸까?


반면, 나는 아이돌이나 유튜버들의 얼굴만 보고는 도무지 맞출 수 없었다. 꾸민 모양새를 보니 아이돌 같기는 한데, 사실 이름은 모른다. 스무 살 언저리 동기들은 잘 맞췄다. 그렇게 우리 조는 밸런스를 맞춰가며 어찌 되었든 즐겁게 레크리에이션 게임을 마쳤다.


레크리에이션이 끝난 뒤 찾아온 식사시간! 엠티라고 하면, 고기를 구워 먹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룰이다. 고기를 구워 먹는데, 고기가 사실 조금 모자랐다. 거기서 나는 나도 모르고 '혈기왕성한 스무 살 남자애들이 얼마나 배고플까'싶어서 내가 먹을 양을 그들에게 양보했다. 식욕과 먹성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나인데, 어린 친구들 사이에 껴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스무 살은 아직 한창 커야 할 나이, 그러니 그들에게 고기를 양보하는 게 타당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도 참 어이가 없고 웃겼다.


고기를 먹고 난 후, 드디어 엠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술게임 시간! 사실, 술을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술게임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 친구들 사이에 껴서 술게임을 하기도 괜히 멋쩍어서 구석에서 튀지 않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 동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술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술잔 받아오기' 벌칙에 걸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사실, 이 동기는 나와 레크리에이션 때 같은 조였던 친구다. 또래 스무 살 여자아이에게 다가가면 서로 부담스러우니, '안전한 30대 누님'에게 찾아온 것이다. 마치 연예인들이 개그맨을 이상형으로 꼽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기꺼이 술잔을 따라주었고, 그렇게 행복한 엠티의 밤은 깊어져갔다.


스무 살 동기들은 대부분 그날 밤을 새운 모양인데, 난 새벽 1시쯤 조용히 혼자 방에 들어가 숙면을 취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나만 자고 있었다! 아무도 나이 많은 나를 깨우지 못했었나 보다. 조금 머쓱하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씻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엠티 버스를 타고, 아주 잠시 20대 대학생으로 돌아간 시간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었다! 나를 엠티에 껴준 동기들, 그리고 함께 어울려준 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이렇게 30대의 의대생 라이프의 첫 시작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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