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이 나이에, 다시 의대로 갔습니다
의대에 합격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꺼내긴 머쓱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스무 살이 아니라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의대합격에 마냥 떳떳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의대열풍’을 비판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나라를 먹여 살리려면 공대를 가야지 왜 다 의대로 몰려?”
“나라가 망하려나 봐 상위권애들이 다 의대가잖아!”
흔히들하는 말이다. 물론, 뭐든 한 곳으로 쏠리는 건 확실히 바람직하지 않다. 의대 열풍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은 일견 타당하다. 의대를 가기 위한 '4세 고시'까지 있다고 하니 고통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의대 열풍을 비판하는 다큐나 기사를 볼 때마다 속이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콘텐츠들을 볼 때마다 난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의대로 몰리는 진짜 이유를 몰라? 공대 간다고 밥 먹여줄 거야?'
공대가 아닌 의대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공대가 나라는 살릴지라도, 한 사람에게 평생 밥을 먹여주진 않기 때문이다.
직계 가족을 포함해 친인척 어르신들 중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의 공대 출신인 분들이 많다. (386은 지금 50~60대가 됐다) 그 중 한 어르신 A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80년대 학번으로 서울권 공대를 졸업하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S전자에 입사했다. 그 시절, S전자에 입사한 덕분에 ‘내 집마련’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며 겉보기엔 그럴듯한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속해있던 사업부가 문제였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사업부는 메모리 사업부일터인데, 당시 S전자에서 제일 잘 나가던 사업 중 하나는 ‘팩시밀리’ 사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팩시밀리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팩스'다. 믿기진 않겠지만, S전자는 한 때 프린터기와 팩시밀러 회사였다. 어르신 A는 바로 그 팩시밀러 사업부에 속해있었다.
내 동기인 스무살 친구들은 팩스를 써보긴 했을까? 팩스로 말할 것 같으면 빛을 번쩍! 쏴서 문서를 다른 곳까지 전송해 주는 기기다. (난 아직까지 팩스의 원리를 100% 이해하진 못한다) 90년대 초반이면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고, 가정용 컴퓨터 보급도 잘 이뤄지지 않던 시절이다. 그러니 팩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신문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 당시의 최신기술을 다 때려넣어 만든 것이었겠지. 초등학교 시절 문방구에 가서 팩스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물론, 요즘에도 팩스를 쓰기야 쓴다. 그러나, '팩스 사업'은 더 이상 핫한 사업은 아니다. 요즘엔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도 팩스를 보낼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다시 A 어르신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팩스 업체’였던 S전자는 1996년 팩시밀리 사업을 접었고, 더 돈이 되는 사업에 주력하기 위한 '체질개선'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팩스 외길을 걷던 그 어르신의 자리도 오래 보전받지 못했다. 물론 어찌저찌 자리보전을 잘 받은 입사 동기들 중에선 팩스 담당을 거쳐 휴대폰, 스마트폰, 반도체로 이어지는 황금길에 합류해 임원이 됐던 사례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친척 어르신 A는 그러지 못했다.
아주 아주 단적인 사례지만, 비슷한 사례가 이뿐 일까. 어릴 때부터 80년대 학번의 ‘공대출신’ 어르신들이 어떻게 노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봐오면서, '회사는 한 사람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있었음에도, 나 역시 회사에 들어가 인생의 한때를 바쳤지만 말이다.
그 시절, 공대를 나와 나라 산업에 이바지한 분들은 이제 60대가 되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결핵퇴치’를 외쳤던 나라에서 ‘저탄고지’를 외치는 나라로 성장했다. S전자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그러나 팩스의 영광을 함께 했던 어르신 A의 노후는? 말을 아낀다. 농담 삼아 "옛날엔 의대는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의대 갈걸 그랬나 봐" 라며 씁쓸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을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닐까.
물론, 이젠 전문직도 어려운 시대다. 일부 직군에선 전문직 자격증이 있어도 구직이 어렵단다. 미래의 의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사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보상도 어느 정도 흔들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회사가 날 버려도, 내가 속한 부서가 사라져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대박'을 내지 않았어도, 그나마 뒤늦게까지 먹고살 수 있는 게 바로 전문직 아닐까.
70~90년대 경제 고도 성장기를 함께한 어르신들이 자녀를 그토록 의대에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그분들 삶에 있다. 그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온 나도 이 열풍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이 나이에 굳이 의대에 온 이유에 대해 변명을 늘어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