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캐나다 유학 이야기
캐나다에 온지도 어언 4~5개월이 되던 때 즈음인 것 같다.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일이 생겼다.
홈스테이 2층 내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앞 책상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만끽하며 문제집에 낙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미 고3 때 겪었던 입시 투쟁을 이 살기 좋다는 캐나다에서! 것도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5월에! 방구석에서 하고 있으니 삶의 낙이 없어 보였다. 많이 지치기도 했었겠지. 대학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 짓을 하고 있으니 내 인생은 무얼 위해 사는 인생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까진 안 했지만 삶이 약간 우울했던 것 같다.
출처: eduswarm.net
그렇다고 유학 첫날에 느꼈던 공포심이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곳이 내가 살 곳이구나. 나의 성향과 잘 맞는 문화를 가진 나라였다. 캐나다에서는 과도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임금이 낮다면 정부 보조금으로 다른 이들과 비슷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 돈이 없어도 나라에서 해준다. 물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면도 있지만 모두에게 의료 혜택을 준다는 정책은 돈 없으면 길에서 죽는 미국의 그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한참 낙서와 함께 문제집을 괴롭히던 중, 전화가 왔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옮겼지만 그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같이 다니던 아는 오빠였다.
"니 이름이 크리스틴이가? 니 고등학교 어디 다녔었노? 한국에서 살던 동네가 어디고?"
인사도 없이 대뜸 폭풍 질문을 쏟아내는 이 오빠, 다른 여자에게 잘못 전화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계속 이상한 질문들을 이어갔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이나 하란다. 결국, 취조하듯 질문을 쏟아내던 오빠 옆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잇, 저 바꿔줘 봐요. 여보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내 친구 목소리.
힘든 고3 시절, 공부라는 명목 하에 같이 독서실 다니고 가방만 두고 나와 떡볶이 먹으러 다녔던 내 친구 목소리였다.
"어? 너?!!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그 오빠랑 있어? 캐나다엔 어떻게 있어? 언제 온 건데?"
나 역시 폭풍 질문을 쏟아냈다.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놀라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질문을 마구 해댔다. 친구의 이야길 종합해보면, 영국으로 유학 가던 중, 날 보기 위해 잠깐 캐나다에 2달 지내러 왔노라고.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만 알았던 터라 그 학교로 오면 무조건 날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학교를 옮긴 나는 그 학교에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날 아는지 탐문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완전 서울 한복판에서 김서방 찾기
내가 캐나다 유학길에 오르던 때에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터넷이 이제 시작되던 때였다. 천리안으로 채팅하고 이메일 계정을 하나둘씩 만들 때였어서 편지 이 외에는 달리 친구들과 연락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같이 영어학원 다닐 때 지었던 영어 이름, 크리스틴. 캐나다에 와서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기에 학교에서는 아무도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 여자아이를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오빠는 내 친구와 깊은(?) 대화를 하던 중, 찾는다던 그 사람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생각났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확인하려고 나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내 친구와 만날 수 있었다. 내일 친구와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날 밤, 당연히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내일이 안 오는지. 내일이면 내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 쏜살같이 친구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를 방문했다. 저 멀리서 그렇게 보고 싶던 내 친구가 막 뛰어온다.
출처: en.fotolia.com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위 소리는 대학생인 친구 둘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방방 뛰며 소리 지르고 빙글빙글 도는 소리다. 웬일 이야를 연신 외치며 학교를 빠져나갔다. 친구는 내가 널 찾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껏 과장해서 이야기했으며 난 거기에 '진짜?'를 연발하며 수다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친구랑 수다를 떠니 그동안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가 확 달아났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의 친구랑 외국에서 학교 다닐 때의 친구는 느낌이 달랐다. 캐나다에서 만난 내 친구는 가족을 만난 것 같다랄까. 이 외로운 타지에서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주변에서도 친구가 오니까 내 얼굴이 밝아졌다고, 그렇게 좋으냐고 타박이었다. 부러운게지. ㅎㅎ 그 후, 친구랑 맛있는 것도 먹고 같이 퀘벡 여행도 다녀오고 즐거운 2달의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찾아온 내 친구는 시험공부에 지친 나에게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줬고 그 친구가 떠난 뒤에는 엄청난 허전함이 몰려왔다.
외국뿐 아니라 자기가 살던 동네가 아닌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그 지역도 잘 모르고 모든지 혼자 해야 한다. 사교성이 뛰어나 사람을 잘 사귄다면야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성인들은 친구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친구가 영국 유학길에 올랐을 땐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그냥 캐나다에 나랑 같이 있지. 다시 혼자된 기분이었다. 그 친구가 영국에 가서 느낄 외로움과 힘겨움을 알기에 더더욱 보내기 싫었다. 친구의 미래를 위해 떠나는 길이니 건강하게 잘 있으라고 이번엔 내가 찾아가겠노라 다짐하며 웃는 얼굴로 손 흔들어 보내줬다.
출처: blog.buzzintown.com
친구랑 보낸 2달간의 추억으로 남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친구. 한 공간에 있지 않아도 언제나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 친구. 나도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그 친구에게.
It is one of the blessings of old friends that you can afford to be stupid with them.
오랜 친구들이 주는 축복 중의 하나는
당신이 그들과 함께일 때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Ralph Waldo Em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