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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Mar 02. 2021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연극 카페 신파를 보고

'카페 신파'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지난 주말 극예술연구회 정기 공연을 보고 왔다.

연극의 냄새를 떠올려보면 퀘퀘한 나무 썩는 냄새, 먼지 냄새, 습기 가득한 분장실 냄새, 차가운 극장냄새, 오퍼실 갇힌 공기 냄새, 천탁 막걸리 냄새, 소주 냄새, 오케이 대패 삼겹살 냄새, 밥버거 냄새, 페인트 냄새 그런 새로 가득한 기억들로 예쁜 날들 사서 맘고ᅩᆷ고생 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마음이 남아 질척이 주변을 맴돌던 때도 있었다. 어느새 거리가 생겨 기억들을 더듬으며 글을 쓰곤 하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작품의 모든 배역에 순간 순간 이입하면서 베 되었다. 나는 관객이자 연출이자 배이자 기획이자 선배이자 신입이기도 했다. 연극 수업을 하기도 했고 연극에 마냥 동경 가득한 학생이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자 기다리는 사람이자 상을 받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잡히지도 않는 꿈과 마음이 사람보다 먼저여서 사람(들)을 기다리게 흔 사람이기도 했던 것 같고, 열정이 넘쳐흐르기도 했고 무던하고 초연하 마음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맴돌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냥 사라ᅵ기도 하고. 미루고 미뤄온 졸업을 하면 연극영화정교사자격증을 받게 되는데 이제는 큰 의미가 없지만 맴돌 구실이라도 만들고 싶어서 가지려 했었지... 하며 특히나 평론가 배역ᄋ 이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주변을 맴돌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막이 내리면 우리 손으로 부수어 없앨 무대를 피 땀 흘려 세우고 다시 부수는 일을 몇 달 마다 반복할 수 있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사람이 되어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연극을 한 모든 기억들은 떠올리면 묘하게 아프고 괴롭고 수치스럽기까지 한데 진한 사랑으로 남아있다. 요가를 진하게 만나게 된 것도 시작은 연극덕분이고 전생처럼 느껴지는 응축해서 쏟아내고 토해낸 열정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 같다. 일요일은 오랜만에 만난 극회사람들과의 현실적인 대화들,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들도 곧 두자리 수가 되겠구나 하며 현실로 돌아와 건강하게 잘 지내고 밥 한끼 하자며 헤어졌다. 오늘은 게을러서 가을에 빌려주었던 프로젝터를 이제야 가지러 학교 동방에 갔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비밀번호는 까먹었다고 생각하는데 늘 손이 기억해서 문을 열며 한 번, 프로젝터와 함께 쓰여진 편지에 또 한번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똥치우기(스트라이크 - 무대 철거 후 남은 소품 및 쓰레기 정리) 마치고 돌아오는 친구들이랑 마주쳤다. 민망해라... 울고 웃고 못나고 아프고 괴로워도 순수하게 사랑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연극도 사람도 사는 것도 내 뜻대로 되는게 잘 없고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아무것도 모르겠고 막이 내리면 떠나야 하지만 그래도 돌고 도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봐야 후회가 없다는걸 배웠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남은건 퀘퀘한 냄새들과 이루지 못한 기억들이라도 흘린 땀과 눈물들이 정말로 무언가를 만들어졌다는걸 눈으로 보고 발로 딛고 있던 사람들이랑 시간이 흘러 재회할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연극은 늘 끝이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증명할 무언가가 있는 영화와 드라마가 더 많은 자본과 명성을 남기는 시대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 보고 듣고 느낀 무언가를 위해 실재의 삶을 쏟아붓는 사람들과 공간들이 여전히 존재하는게 나는 여전히 신기하고 고맙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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