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넷플릭스의 신작이 새해가 시작되며 공개되었다. 한국어 제목은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이다.
곤도 마리에는 7~8년 전에 일본에서 정리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그녀가 쓴 책은 일본에서는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의외로 서구권에서도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일본에서는 자주 보는) 짧고 굵게 임팩트를 주는 독특한 유행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티셔츠나 수건을 정리하는 책이 어떻게 밀리언셀러가?
그렇지만 이번 시리즈를 보며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곤도 마리에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깔끔한 수납이나 효율적인 공간활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별다른 의식 없이 지낸다. 이사갈 때를 제외하고는 구조나 배치에 대해 고민할 일도 별로 없고, 청소와 마찬가지로 정리는 루틴하지만 안할수는 없는, 최소한의 시간을 들이고 싶은 구질구질한 일상이나 심지어 필요악에 가깝다.
그렇지만 공간은 물질로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꼭 대단하게 디자인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처음 가는 여행지의 아기자기한 작은 호텔이나 낡은 레스토랑에서 낯설지만 긍정적인 기운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정신과 연결되는 정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와 통째로 이어져있다. 그렇기에 인생의 경로가 바뀔 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일지라도 정신적으로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결국 정리라는 것은 물건을 버리고 가지런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며, 그것을 물리적 공간에 펼쳐놓는 것이다.
시리즈는 매회 반복적인 패턴으로 진행이 되는데, 가장 가슴 뭉클한 순간은 곤도 마리에가 방문한 집과 인사를 나누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첫번째 단계이다. 누가봐도 '일본에서 온 정리의 여신'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완벽하게 깔끔한 니트와 스커트 차림으로 바닥에 정좌를 하고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늘어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미국인들은 갑자기 이 일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실은 너무 고마운 곳인 집을 감사의 대상으로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든 것은 인사에서부터 굉장히 정신적인 프로세스로 이어진다. 옷과 물건을 만졌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들만 두고 나머지는 작별을 한다. 작별을 하더라도 과거에 추억과 역사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보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공간을 몇십 프로 확보했냐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이다.
일본 문화에서 모든 사물은 물성, 혹은 신성을 가진다. 조금 더 동양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모든 물건에는 혼이 담겨져있다. 실제로 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물건에는 그 물건을 고르고 쓰던 사람의 손떼가 묻어있고, 특히 좋아하는 물건에는 정신적인 교류의 흔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방식을 집이나 물건에 대입시키니 이제까지 소비재에 지나지 않았던 하나하나가 함께한 추억과 어울어져 반짝이는 의미를 드러낸다.
의뢰인들은 집이 손 댈수 없을만큼 어수선해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다른 삶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육아에 지친 젊은 부부, 40년간 삶의 동반자였던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이주한 가족, 부모님께 성인으로서의 안정된 생활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이 커플.
어쩔 수 없이 한 달동안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과 before / after를 비교하며 환호를 보내는 구성을 반복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담긴 이야기들과 삶, 그리고 정리를 통해 치유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매번 감동을 준다. 정리뿐 아니라 일상을 어떤 시선으로 보낼지를 제시하는 따뜻하고 영리한 지침서.